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봄 기운 가득/60년생 이상 편백나무 울창한 숲 이뤄/산책로엔 애기동백 활짝/장흥126도타워 전망대 오르면 남도 바다 파노라마로/천년고찰 보림사에선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만나
대견하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녹색 잎 자르르 윤기 돌기 시작하자 마침내 애기동백 수줍은 붉은 꽃 활짝 피워냈다. 바다에 실려 오는 훈훈한 바람에 이름 모를 새들 이리저리 빠르게 날아다니며 신이 나 지저귀고, 얼어붙었던 계곡에 맑은 물 장쾌하게 흘러 메마른 가슴도 적시니 남도는 이미 봄이다.
◆서둘러 온 정남진의 봄
수도권은 봄이 오는가 싶더니 꽃샘추위가 두툼한 외투를 다시 꺼내 입게 만든다. 그래도 바뀌는 계절을 어떻게 막을까. 남도는 이미 꽃이 피었다는 소식 전해지니 행여 첫봄 놓칠세라 조급한 마음에 남도의 끝자락 전남 장흥으로 나선다. 관산읍 장흥126도타워 주차장에 도착하자 파란 하늘 위로 웅장하게 솟은 전망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 타워의 전체 높이는 46m에 달한다. 디자인이 아주 독특하다. 상층은 떠오른 태양, 중층은 황포돛대, 하층은 파도를 형상화했다. 이곳에 장흥126도타워를 세운 이유가 있다.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위도상 정동쪽에 정동진이 있고, 경도상 정남쪽에는 정남진이 있는데 장흥이 바로 정남진이다. 그 경도가 126도여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장흥에서 시작된 동경 126도는 광화문을 지나 북한 중강진, 그리고 안중근 의사 의거 장소인 중국의 하얼빈과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동경 126도는 단순한 지리적 좌표를 넘어서 남과 북을 이어주는 ‘통일 희망의 좌표’라는 의미를 전망대 이름에 담았다.
10층 파노라마 전망대에 오르자 봄 햇살을 받아 윤슬이 반짝이는 정남진 바다가 대화면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득량만 일대와 고흥군 득량도, 소록도, 거금대교, 완도군 금당도 등 수많은 섬들이 겹치고 아련하게 멀어지며 예쁜 수채화를 그린다. 9층은 통창으로 꾸민 카페로 맛있는 커피를 즐기며 봄 바다를 여유 있게 즐기기 좋다. 타워 마당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도 서 있다. 장흥군 유림 안홍천씨가 안중근 의사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 국내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1955년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에 해동사를 건립해 안중근 의사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26일 추모제향을 모시고 있다. 또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 2010년 죽산 안씨 문중의 한 독지가가 건립비 전액을 기탁해 하얼빈과 연결된 정남진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건립했다.
◆우드랜드 걷고 마음건강도 챙겨볼까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서둘러 온 남도의 봄기운을 제대로 즐기기 좋은 곳이다. 억불산 자락 120㏊에 60년생 이상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며, 건강한 피톤치드를 쏟아내 마음과 몸의 건강을 챙기는 우수웰니스관광지로 선정됐다. 톱밥이 깔린 부드러운 산책로를 맨발로 오르면 억불산 며느리 바위 포토존인 흔들의자가 나온다. 그 너머 깎아지른 산비탈에 마치 엄지손가락 모양의 바위가 하나가 우뚝 솟은 풍경이 아주 기이하다. 오래전 이야기가 전해진다. 탐진강변 마을에 사는 구두쇠 영감이 시주받으러 온 도승을 박절하게 대하자 며느리는 도승에게 대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도승은 며느리에게 “이곳에 물난리가 있을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산으로 가라”고 알려줬다. 도승이 예언한 날 실제 물난리가 났고, 며느리가 이를 피해 산을 오르는데 뒤에서 “나를 두고 혼자만 가느냐”는 시아버지의 애절한 외침이 들렸다. 이에 뒤를 돌아본 며느리는 그대로 돌로 변했단다. 해발고도 517m 억불산은 주능선에 부처 모양을 닮은 수많은 바위가 있어 억불산으로 불리게 됐다.
우드랜드에는 한낮에도 햇살 한 줌 비집고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올라간 숲길이 이어진다. 억불산 정상과 연결되는 무장애 데크로드 말레길, 힐링과 휴식의 공간 치유의 숲, 천일염과 편백으로만 구성된 온열 치유시설 편백소금집, 난대자생식물원으로 구성돼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편백소금집은 아토피, 고혈압, 뇌졸중 등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고 자연치유를 돕는 시설로 겨우내 방전된 기력을 다시 건강하게 채우기 좋다. 소금동굴, 소금마사지방, 소금해독방, 편백반신욕방, 황토방, 소금 단전호흡방 등을 갖췄다. 산책로에는 애기동백이 활짝 피어 해맑은 미소로 여행자를 반긴다. 3월은 장흥의 동백이 흐드러지는 시기다. 특히 관산읍 천관산 동백생태숲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2만그루가 자생해 이맘때면 숲을 온통 붉게 물들인다.
안양면 전라남도 마음건강치유센터도 지난해 우수웰니스관광지로 선정됐다. 원광대학교 장흥통합의료병원 2층에 있는 정신건강치유 전문기관으로 팬데믹을 계기로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설립됐다. 특히 한의학 기반 통합의학 치료, 산림치유, 아로마테라피 등 다양한 체험형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며 약재를 이용하는 족욕이 인기다. 조선 임금 영조의 건강비결로 알려진 청정탕(맥문동·모과·길경), 간기능 회복을 돕는 해독탕(갈근·산수요·백하수오), 피를 맑게 하고 혈압을 낮추는 강하탕(천궁·아가피·백복령) 등이 있다. 다양한 약재를 넣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차 한 잔 마시니 여행의 피로가 저절로 풀리는 기분이다. 장흥읍 장흥힐링테라피센터는 장흥군신활력플러스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치유 체험 공간이다. 테라피실에서는 지역 특산 생약초를 활용한 힐링 및 치유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생약초와 아로마 오일을 접목한 체질별 힐링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장흥은 원기를 북돋우는 보양식, 장흥삼합이 유명하다. 만나숯불구이로 들어서자 고기 익는 맛있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부드러운 한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차례대로 올린 뒤 입에 밀어넣으면 산과 바다의 건강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장흥토요시장의 한라소머리국밥도 소문난 맛집. 안으로 들어서자 국밥이 끓는 구수한 향이 진동한다. 여러 차례 토렴해 내오는 소머리국밥은 군내가 전혀 없고 진한 사골육수의 깊은 맛이 뛰어나다.
◆아홉 마리 용 전설 깃든 보림사
해발 510m의 가지산 깊은 산자락에 있는 천년고찰 보림사는 인도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린다. 보림사는 장흥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대적광전에 모신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좌의 광배는 없어지고 불신만 남아 있으며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와 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 김수종이 시주해 불상을 만들었다는 글이 적혀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특히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첫 번째 불상으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신라시대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 주름이 생생해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오뚝한 콧날, 굳게 다문 입에서는 약간의 위엄도 느껴진다. 흔치 않은 철조불상인 데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검붉은 색으로 변해 보면 볼수록 신비를 더한다.
보림사 여러 건물의 지붕 꼭대기를 자세히 보면 용머리 조각이 얹어져 있다. 아홉 마리 용과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신라시대 명승 원표대덕이 가지산에서 참선하던 중, 못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이 난동을 부려 힘들다는 선녀의 호소를 듣게 된다. 이에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지자 여덟 마리의 용은 도망갔으나, 백룡 한 마리가 끝까지 버텼고 원표대덕이 더 강력한 주문을 외우자 결국 백룡도 도망간다. 이때 용이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자르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용이 피를 흘리며 넘어간 고개는 ‘피재’, 용이 머물렀던 자리는 ‘용문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 용들이 떠난 못을 메운 자리에 지어진 사찰이 바로 지금의 보림사로 전해진다. 대적광전 앞에는 설화 속의 연못을 상징하는 작은 연못이 남아 있다. 아홉 마리 용은 이름이 있다. 그중 ‘비희(贔屭)’는 거북을 닮았으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을 좋아해 주로 비석의 받침대로 쓰인다. 보림사에 뒷산에는 헌안왕 3년(859) 왕의 간청으로 보림사 주지가 된 보조선사의 사리를 모신 보조선사탑과 보조선사탑비도 조성돼 있으며 탑비의 거북받침돌이 바로 비희다. 또 명부전 지붕의 용은 ‘치문(螭吻)’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물을 삼키는 것을 좋아한다. 이에 불을 억제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사찰이나 궁궐 지붕의 장식으로 사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