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타격하자 이란이 중동의 원유 수송 우회로인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 공격으로 대응했다. 이란이 미국에 ‘키사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 원칙으로 맞받으면서 국제 에너지 위기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유가 불안이 커지자 미국은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한 달간 완화한 데 이어,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대해서도 제재를 완화하는 조치에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 14일째인 13일(현지시간) 미국은 이란 석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폭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군 중부사령부가 내 지시에 따라 이란의 왕관보석인 하르그섬의 군사 목표물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당 공격이 “중동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격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엑스(X) 계정을 통해 “미군은 하르그섬에 있는 90개 이상의 이란 군사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며 “이 공격으로 해군 기뢰 저장시설들, 미사일 벙커들 그리고 여러 다른 군사 시설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유가 위기를 의식한 듯 “품위를 이유로 석유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이나 다른 누구라도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방해하기 위해 무언가 한다면, 이 결정을 재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4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르그섬을) 재미 삼아 몇 번 더 공격할 수 있다”고 추가 공격을 시사했다.
페르시아만 북부 하르그섬은 이란의 에너지 수출 전초기지다. 하루 최대 1000만배럴, 연간 9억5000만배럴의 원유를 운송할 수 있으며 이란의 석유수출 물량의 90%가 거쳐 간다. 하르그섬 석유 인프라 공격은 이란은 물론 세계 에너지 시장에도 엄청난 타격이기에 미 정부에는 일종의 ‘레드라인’이었다.
그러나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민간 유조선 공격까지 이어가자 압박 전략으로 하르그섬 일부를 폭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이 기뢰 부설 등 해협 봉쇄 조치를 지속할 경우 ‘레드라인’도 넘을 수 있다는 강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이 섬을 장악하기 위한 지상군 상륙의 사전 정비 작업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란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이란 국영방송 등에 따르면 이란군은 14일(현지시간) 샤헤드 드론으로 UAE 푸자이라 항구의 석유저장고를 공격했다. 이에 항구에 화재가 발생해 석유 선적 작업이 일부 중단된 뒤 하루 만에 재개됐다. 푸자이라 당국은 “요격된 드론의 파편이 떨어진 뒤 불이 나 소방당국이 대응했다”며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푸자이라 항구는 호르무즈해협의 바깥쪽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오만만에 있어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 중동 석유를 수출할 수 있는 우회로로 꼽힌다. 아부다비 유전으로부터 약 400㎞에 달하는 육상 송유관(ADCOP)을 통해 하루 최대 180만배럴의 원유가 이곳으로 이송된 뒤 아시아와 유럽으로 수출된다.
이란군을 총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하탐 알안비야는 이날 “UAE 지도부에 경고한다. 이란은 UAE 내 주요 항구, 부두 그리고 도시 곳곳에 숨겨진 미군 미사일 발사기지를 타격해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할 권리가 있다”며 “UAE 무슬림 형제들과 주민들이 이들 장소에서 벗어나길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란은 중동 최대 물류 허브인 두바이의 제벨 알리 항구, 아부다비의 할리파 항구 등도 공격 대상에 올리며 주민과 노동자들에게 즉각 대피하라고 경고했다. 이란이 비(非)미국 자산에 공개적으로 위협을 가한 것은 개전 후 처음이다.
미 국무부는 오만의 비필수 인력에 대해 떠날 것을 명령했다. 이라크에서도 이란 추종 무장 세력들의 대사관 등 미국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르자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은 이라크 내 자국민에게 “즉시 이라크를 떠나라”고 통보했다. 전날 “눈에 띄지 말라”는 권고보다 수위를 높인 것이다.
전쟁 여파로 국제 원유가격이 치솟자 미국은 러시아에 이어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3일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 에너지 산업, 석유화학 품목과 관련한 세 개의 일반 면허를 갱신했다. 이를 통해 미국 기업들은 비료를 포함한 베네수엘라 석유화학 제품을 구매해 미국으로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 전기·석유화학 부문 지원을 위한 상품, 서비스, 기술을 제공하는 것도 허용된다. 다만 최종 계약은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전날에도 러시아 원유 제재 일부를 완화해 이미 선적된 석유 제품에 한해 한 달간 판매를 승인하는 조처를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