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경찰 고발로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의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를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협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16일 밝혔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SH 측은 국가유산청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에서 11곳을 시추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매장유산법에 따르면 이미 확인됐거나 발굴 중인 매장유산의 현상을 변경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세운4구역 부지는 법률적으로 아직 발굴 중인 매장유산 유존지역"이라며 "SH 측이 허가 없이 불법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세운4구역 일대는 공식적으로 발굴 조사를 마치지 않은 상태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22∼2024년 일대 부지를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도로 체계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을 비롯해 여러 건물터, 배수로 등이 발견됐다.
마을을 보호하고 침입자를 단속하기 위해 입구에 세운 이문(里門) 흔적도 찾았으며, 최소 7∼8마리의 소뼈가 묻힌 수혈(竪穴·구덩이)이 확인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지리적 위치, 발견된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등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자료로 보고 있다.
SH 측은 매장유산을 어떻게 보존할지 계획을 제출했으나, 2024년 문화유산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논의가 보류된 상태다.
SH 측은 현재까지 재심의 자료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매장유산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매장유산 유존지역)은 발굴 조사를 모두 마쳤다는 행정적 조치가 없으면 건설 공사를 추진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 현장을 조사한 뒤, SH 측에 관련 행위를 모두 중단하도록 했고, 반입된 중장비도 철수시켰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와 종로구를 향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국가유산청 측은 "서울시는 이달 19일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열어 4월 중으로 사업시행인가를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며 "일방적 강행"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유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세계유산센터는 지난 14일 서한을 보내 "세운지구 개발을 강행할 경우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유산센터는 대규모 개발 공사가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비롯해 세계유산과 그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센터는 "(서울시가) 세운4구역의 개발 인허가 절차에 앞서 영향평가를 받겠다는 입장 확인 서한을 3월 안에 회신하지 않으면 올해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보존 의제'로 상정하거나 공식 현장 실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세운4구역을 둘러싼 입장과 대응 방안을 설명할 계획이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세계유산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가 세운4구역에 들어설 수 있는 건물 높이를 상향 조정하며 재개발 사업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가유산청은 연일 반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는 최근 두 차례 만나 사전 조정 회의를 열었으나,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협의체 구성 등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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