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얼 하고 놀았을까.
경주 월지에서 발굴된 14면체 주사위 ‘주령구’가 그 단서를 제공한다. 주사위 각 면에는 ‘소리 없이 춤추기’,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 ‘다 마시고 큰소리로 웃기’, ‘석 잔 한 번에 마시기’ 등 술자리의 벌칙이 적혀 있다. 신라 사람의 술자리 게임용 주사위다. 백제 사람들은 투호놀이, 윷놀이,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성불도’라는 보드게임이 유행했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를 적은 주사위 세 개를 굴려서 큰 깨달음을 의미하는 ‘대각’에 도달하면 끝나는 게임이다. 성불도 놀이판은 지금도 전국 각지의 박물관에 남아 있다. 한글 성불도가 남아 있으니, 여성들도 즐겼던 모양이다.
조선시대에는 ‘작성도’가 유행했다. 성불도의 불교적 세계관을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바꾼 보드게임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성리학 개념들을 배우게 된다. 가장 인기 있었던 보드게임은 ‘종정도’다. 말단 관원으로 시작해서 ‘봉조하’로 은퇴하는 과정을 구현한 게임이다. 조선시대 공무원 인사제도를 공부하기 좋다. 실제로 과거 공부하는 선비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주사위로 승부가 갈리는 단순한 게임이 싫증난다면 ‘남승도’에 도전해보자. 명승지를 유람하는 놀이다. 수십 칸으로 구성된 놀이판에 전국 각지의 명승 고적이 적혀 있다. ‘부루마블’과 비슷하다. 우선 캐릭터를 선택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검사, 마법사, 성직자, 도둑을 선택하듯 시인, 도사, 검객, 미인 중 하나를 선택한다. 주사위를 던져 칸을 이동하는 건 부루마블과 비슷하지만, 부동산에 투자하는 부루마블과 달리 남승도는 명승 고적에 어울리는 시를 지어야 한다. 고적에 얽혀 있는 역사와 인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상당히 수준 높은 게임이다.
시짓기를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처음 공부하는 어린이들도 놀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익혔다. ‘초중종’이라는 놀이가 있다. 세 글자를 불러주면 그 글자가 들어 있는 시구를 기억해 내는 놀이다. 외우는 거라면 질색하는 아이들이 명시 수백 편을 줄줄 외우게 만드는 게임이다. 낱글자가 적힌 600개의 나무조각을 네 사람이 150개씩 나누어 가진 뒤, 가진 글자를 조합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패’라는 놀이도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가투’라는 시조 놀이가 유행했다. 시조는 초중종 3장으로 구성된다. 진행자가 무작위로 시조를 선택하여 초장을 읽어주면, 참가자가 그 시조의 종장이 적힌 카드를 찾아내는 놀이다. 일본의 와카 놀이 ‘가루다’와 비슷하다. 한때는 전국대회가 열릴 정도로 성황이었다.
학교에서 시를 어렵게 가르쳐서 그렇지, 시는 원래 놀이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삼행시’ 짓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세 글자를 차례로 부르면 그 글자로 시작하는 세 개의 문장을 만드는 게임이다. 겨우 운을 맞추어 억지로 말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발한 착상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도 있다. 재치와 순발력이 저절로 드러난다.
놀이라는 것은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를 보자. 딱지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모두 규칙이 있다. 놀이라는 것은 규칙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경쟁하거나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시를 짓는 데에도 규칙이 있다. 옛사람은 한자로 시를 지었다. 한시(漢詩)라고 한다. 한시는 글자수가 정해져 있다. 다섯 글자 또는 일곱 글자로 1구를 만들고, 4구 또는 8구가 모여 한 편의 시를 이룬다. 글자 수만 채운다고 끝이 아니다. 운을 맞추어야 하고, 소리의 높낮이도 고려해야 한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규칙이 단순한 놀이는 쉽게 질린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익숙해지면 복잡한 규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규칙만 지킨다고 끝이 아니다. 규칙을 지키면서도 표현이 참신하고 내용이 설득력 있어야 한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제시한 요한 하위징아는 인류 문화가 모두 놀이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종교와 철학, 신화와 예술, 심지어 전쟁과 법률까지도. 그중에서도 시는 원초적 놀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시를 어렵게 여길 필요가 없다. 끝말잇기, 수수께끼, 가로세로 낱말 퀴즈처럼 시는 언어를 이용한 놀이의 하나이다. 하위징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놀이다.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