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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칼럼] 사교육은 ‘필요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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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4세·7세 고시’ 외신도 경악
국회, 영·유아 레벨 테스트 금지
사교육 총액 감소, 양극화는 심화
학교 교육·노동시장 회복이 관건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한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 실태에 경악했다. ‘hagwon(학원)’이라는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초등 의대반’까지 암암리에 운영 중이라고 한다. 사교육 광풍에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6세 미만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조사(2024년 7∼9월)한 결과 참여율이 47.6%, 사교육비 총액이 8154억원, 월평균 33만2000원에 달했다. 연간 3조3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시민단체가 7세 고시를 ‘아동학대’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에 이르렀다. 국회가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영유아 학원 ‘레벨 테스트’를 금지하는 학원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1월29일 이후 처음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없이 법안을 처리한 것만 봐도 폐해가 크다는 방증이다.

김기동 수석논설위원
김기동 수석논설위원

지난해 사교육비가 5년 만에 감소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7% 감소했다. 사교육 참여율(75.7%)도 전년 대비 4.3%포인트 하락했다.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 수가 513만명에서 502만명으로 12만명(2.3%) 줄어든 탓이 크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부담은 커졌다. 사교육 참여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사상 처음 60만원을 넘었다. 소득에 따른 격차도 여전했다.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6만2000원에 달했다. 300만원 미만 가구는 19만2000원으로 3.9배 차이를 보였다. 교육부는 “사교육 양극화가 심화된 건 아니다”는 입장이고, 교원단체는 “교육기회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엇갈린 진단을 내놨다.

지금의 사교육은 더는 보조재가 아니다. 공교육을 압도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다. 사교육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재능을 키우기 위한 사교육은 필요하다. ‘사회악’이라기보다 ‘필요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교육 격차를 키운다는 것이다. 경제력과 지역에 따라 억울하게 뒤처지는 학생이 생겨난다. 사교육이 계층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정권 성향에 따라 입시제도가 격변한다. 정시 확대를 외치다가 느닷없이 수시와 절대평가를 내세운다. 학생들은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입시제도가 급변하는 ‘복불복’시대를 살고 있다. 사교육을 때려잡겠다는 공약 속에서 정치적 해법만 난무하는 게 작금의 교육현장이다. 누더기 입시정책에 학생·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사교육은 귀신같이 빈틈을 치고 들어온다. 학부모들은 국가의 발표보다는 학원가 설명회에 솔깃해한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 응답자의 절반(49%)이 노후가 위태로워지더라도 자녀 사교육비를 줄이지 않겠다고 답했다. 자식이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청년세대의 결혼·출산 기피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사교육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사교육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은 공교육에 대한 신뢰 부족과 입시 중심 구조다. 사교육에 잠식된 학교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 사교육 시장에 대한 합리적 관리도 필요하다. 학원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교육비 정보 공개 등 정책적 관리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심해지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의치한약수’로 불리는 특정 학과 쏠림현상이 커지고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절실하다. 정부가 이달 중 내놓을 사교육 경감대책이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