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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극일의 표상,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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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서 겨눈 것은 日 민족 아닌 불의한 침략
힘의 균형 대신 정의·공존의 평화 설계하려 해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6주기이다. 우리는 그를 흔히 항일의 영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다시 새겨야 할 또 다른 이름은 항일을 넘어선 극일(克日)의 표상, 안중근이다. 항일이 침략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면, 극일은 정의와 사상 그리고 품격으로 일본을 넘어서는 길일 것이다. 안 의사가 보여준 삶과 정신은 단순한 항일 투쟁을 넘어 이러한 극일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탈의 핵심 인물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했다. 이는 단순한 의거가 아니라 국권 침탈에 맞선 역사적 결단이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국권이 무너져가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안 의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개인의 생명을 넘어 민족의 존엄과 평화를 위한 정의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체포된 이후에도 자신의 행동을 전쟁 행위라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분명히 했다. 안 의사가 겨눈 것은 일본 민족이 아니라 불의한 침략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거사는 단순한 복수나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과 정의를 위한 실천이었다.

박귀언 뤼순일본관동법원기념관 이사장
박귀언 뤼순일본관동법원기념관 이사장

안 의사의 진면목은 옥중 생활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분노와 증오에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인간적 품격을 유지했다. 그의 태도는 적국인 일본인들까지도 감동시켰다. 뤼순(旅順)감옥의 간수와 재판 관계자들, 그리고 현지의 일본인 지식인들까지도 그의 당당한 정의감과 고매한 인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안 의사를 단순한 사형수가 아니라 신념을 지닌 인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의 말과 행동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사형이 확정된 이후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그가 직접 쓴 글씨인 유묵 하나 받아 간직하려는 자들이 늘어났다. 이들의 요청으로 말미암아 안 의사가 남긴 유묵은 200여 점에 이르고 그중 70여 점이 세상에 드러났으며 31점이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사형수에게서 이러한 존경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그의 인격과 정신이 국적과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글씨에는 ‘위국헌신 군인본분’,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견리사의 견위수명’과 같은 문구가 담겨 있어 그의 삶과 철학과 정신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본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순국을 결심하여 자신이 남긴 말과 글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조기 사형 집행으로 완성을 보지 못했지만, 그 구상은 매우 선구적이었다. 그는 한·중·일 3국이 상호 침략을 멈추고 공동의 평화기구를 설립해 서구열강의 침탈에 대응해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공동은행 설립, 공동방위군 창설, 공동의회 구성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까지 구상했던 점에서 그의 사상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적 비전을 담고 있었다. 20세기 초는 제국주의의 힘이 세계질서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힘의 논리가 국제관계를 지배하던 그 시기에 안 의사는 도덕과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동양 질서를 구상했다. 힘의 균형이 아니라 정의와 공존의 원리를 통해 평화를 설계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동북아 평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는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중근이 보여준 극일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불의한 침략에 맞서 행동으로 보여준 정의였다. 둘째, 역사와 국제법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거사를 설명한 정당성과 당당함이었다. 셋째, 고매한 인격으로 적국의 사람들까지도 존중하게 만든 품격이었다. 넷째, 동양평화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여 공감을 이끌어낸 사상이었다.

오늘의 한·일 관계는 복잡한 현실과 이해관계 속에 놓여 있다.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시대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의 동원이 아니라 사상의 깊이이다. 안 의사는 총으로 일본을 쏘았지만, 사상과 인격으로 제국주의를 넘어섰다. 우리는 무엇으로 일본을 넘어설 것인가, 힘인가, 분노인가, 아니면 품격과 사상인가.

순국 116주기를 맞은 안 의사의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극일이란 단순한 적대나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정의와 인격, 그리고 평화의 비전으로 일본을 넘어서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안중근 의사! 그는 자신의 삶과 사상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극일의 길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박귀언 뤼순일본관동법원기념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