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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자전거 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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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가 활짝 핀 길을 따라 한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자전거를 타고 행복 바이러스를 사방에 뿌리며 지나간다. 그 뒤를 언제 꽃망울을 터트릴지 모를 개나리들이 부러운 듯 바라본다. 아, 나도 자전거 타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봄기운 완연한 대기를 가르며 달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48세 때 자전거 타기에 도전해 성공한 마크 트웨인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라, 살아 있는 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렇게 부르짖었건만, 6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에 매료돼 자전거 교실에 다니면서까지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톨스토이도 나보란 듯이 자전거를 타고 모스크바 거리를 자유롭게 누비며 약 올리는데…. 웬일인지 나는 매번 자전거 타기에 실패, 또 실패만 거듭했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만 해!”라고 아인슈타인도 거듭 격려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자전거 타기엔 균형 감각이 역부족인가 봐. 하여 나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추앙하면서 그 뒤를 따라 걷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걷기는 자신만만하니까.

그래도 봄이 되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띄니 한때 ‘자전거 타는 남자’에게 푹 빠져 살던 때가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21세기 SF 판타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중성과 예술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움켜쥔 미국 SF 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 그는 내게 있어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자전거 타는 아름다운 남자’로 각인되어 있다. 그 때문에 기어코, 기를 써서라도, 온 힘을 다해 나도 ‘자전거 타는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대신 나는 한동안 그의 자전거 뒤를 따라다녔다. 가난해서 따로 집필실이 없는 그가 자전거를 타고 UCLA도서관 지하 타이핑 룸으로 갈 때도, 그곳에서 30분마다 10센트를 내고 타자기를 빌려 쓰면서 이제는 디스토피아의 고전이 된 ‘화씨 451’(책을 태우는 온도)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도, 그리고 틈틈이 위층 서고로 올라가 그가 좋아하는 알짜배기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도, 그를 따라 나도 그 책들을 읽었다. 책 먹는 여우처럼 그가 건네는 알짜배기 책들만 골라 꿀꺽꿀꺽!

하지만 내가 그를 특히 더 좋아했던 이유는, 그는 성공한 작가가 되어서도 평생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고, 최신식 첨단기술보다는 단순하고 인간적인 도구들을 사랑해, 컴퓨터보다는 타자기를, 이메일보다는 손편지를,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선호하며, 누구보다도 책과 책 사이에 숨은 셀 수 없이 많은 소중한 숨구멍들을 찾아내었으며, 자전거를 ‘행복 기계’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마치 자전거 타는 단순한 즐거움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는 듯이!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