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는 눈이 없다.
신분과 행색, 성품이나 과거 삶을 투영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국민에 똑같이 적용되는 그 시대 약속이다. 약속의 정점에 헌법을 뒀다. 그 많은 법을 일률로 조율할 수 없어 약속의 원칙을 정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최소한 이 근본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자는 다짐인 셈이다.
여당이 주도해 마련된 법왜곡죄가 18일 시행 일주일째다. 법왜곡죄는 그 흔한 특별위원회나 공청회조차 없었지만 형법의 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에 123조의2로 터 잡았다. 122조 직무유기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을, 123조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데, 법왜곡죄는 무려 ‘10년 이하의 징역’이라고 적혔다.
응당 적용해야 할 법령을 적용했는지, 위·변조된 증거를 알고도 재판·수사에 사용했는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걸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했는지가 요건이다. 법관과 검사는 물론 범죄수사 직무 수행자가 모두 대상이다. 경찰은 물론 사실상 범죄를 다루는 공무원들에겐 폭넓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법 조항만 보면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추구해야 할 너무나 기본적인 사안들이다.
하지만 법왜곡죄가 형법에 자리 잡은 과정과 앞으로 쌓일 사건들에 걱정이 앞선다. 형법 개정 시 원래 있던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면서 안정적 적용을 위해 6개월 늦춰 시행하면서도, 중형에 처하는 새 형벌 조항은 바로 시행한 건 사법부·검찰을 향한 ‘분노’가 담긴 탓일까.
법왜곡죄가 시행되자 조희대 대법원장과 박영재 대법관, 지귀연 부장판사가 고발됐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이재명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이후 사퇴 압박을 받았다. 박 대법관은 당시 주심을 맡아 같은 비판이 이어지자 법원행정처장직을 내려놨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구속 기간은 날이 아닌 실제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받아들여 논란이 됐다.
일부 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선 12·3 비상계엄 선포로 1심에서 내란죄가 인정돼 무기징역이 선고된 윤 전 대통령과 세 법관 등의 일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여당 의원들은 법왜곡죄 추진 과정에 이들에 대한 처벌을 언급했는데, 실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정권마다 여야를 가려가며 부당하게 수사·기소한 검사들도 겨눴지만 올해 수사·기소 분리가 구체화하면 법왜곡죄 수사 대상은 검사보다 경찰로 수렴할 여지가 있다.
다만 조 대법원장과 박 대법관, 지 부장판사 등의 과거 행위들을 12일 0시 시행된 법왜곡죄로 처벌할 순 없을 것 같다.
헌법 13조는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모든 법은 시행되기 전 수사·재판에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이를 알면서 악의적으로 고소·고발하면 오히려 무고죄(誣告罪)가 성립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무고죄 요건이 엄격하지만, 검사·판사·경찰이 국민을 맞고소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사법부·검찰의 과오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긍정론에도 국민 생활에 법왜곡죄가 스며드는 과정을 가정하면 우려는 남는다. 이미 법관이 고소당한 사례도 나왔다. 경영자의 주가조작 등 혐의 일부에 무죄가 나오자 “소액주주 피해를 배제한 부조리와 모순된 내용이 포함됐다”며 재판장을 직권남용과 법왜곡죄로 고소했다. 항소심이 이어질 사안에서 법왜곡죄가 재판부 압박으로 작용할 여지를 보여준다.
재판에 대한 불만들이 남소(濫訴)로 이어질 공산도 충분해 보인다.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진정·청원 2060건 중 ‘재판 결과 불만’은 1731건(84%)에 달했다. 이 중 1179건이 공람종결됐다. 동일한 민원을 정당한 사유 없이 3회 이상 반복하면 법원은 2회 이상 처리결과를 통지하고, 이후 반복민원은 공람종결 처리한다. 최근 5년간 연평균 2600여건에 달했던 재판 결과 불만 상당수가 법왜곡죄 고소로 둔갑하지 않도록 대책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