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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목사의 종교관이 보여준 것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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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며 국제사회는 다시금 자국 우선주의와 갈등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국가 간 소통을 이어주는 제3의 통로로서 '민간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주목받는다.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가 미국 방문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0분간 면담한 사건은 외교가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함의를 던진다. 대통령 중심제인 한미 관계의 기본 축은 정상 간 외교다. 행정 수반인 총리가 외교 의전 상 정상급이 아님에도, 촉박한 일정 중인 미 대통령이 별도의 시간을 내어 면담에 응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이 파격적인 만남의 배후에는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닌 종교 네트워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핵심 연결 고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목사와 백악관 신앙 고문인 폴라 화이트 목사였다. 김 총리는 방미 과정에서 화이트 목사를 먼저 만나 한국의 종교적 지형과 한미 관계의 현안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 국내 종교 자유와 갈등 양상에 대한 밀도 있는 대화가 오갔고, 이는 곧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그 이면에 담긴 외교적 중량감은 상당했다.

 

이 만남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한국 교계와 미국 복음주의 네트워크 사이의 오랜 교류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끄는 이영훈 목사가 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그는 현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정교 유착 논란과 압수수색이라는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그와 별개로 그는 한국 정부 대표가 미국 정치권과 접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했다. 정치적 갈등을 넘어선 이러한 행보는 종교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이 목사의 궤적을 주시해온 이들은 그의 종교관을 두고 ‘실용적 개방성’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보수적 복음주의 목회자이면서도 타 종교나 신흥 종교를 무조건적인 배척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유연함이다. 이런 태도는 그의 학문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출신이다. 연세대 신학대는 한국 신학계에서 비교적 개방적인 전통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국 신학의 지평을 확장한 변선환, 서남동 교수 시절에는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종교 간 이해를 강조하는 초종교적 분위기가 강했다. 이러한 학문적 전통이 이 목사의 목회철학에도 투영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 사회는 종종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극단적 이분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는 정교 분리를 절대적 원칙으로 강조하며 종교가 공적 영역에 관여하는 것 자체를 경계한다. 반대로 종교를 정치적 동원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그러나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종교와 정치는 완전히 단절된 두 세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배와 종속이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협력적 균형’에 있다.

 

이번 사례가 보여 준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종교가 정치 권력을 대신하려 한 것도 아니고,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려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종교 네트워크가 외교적 대화를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것은 종교가 가진 사회적 신뢰와 국제적 연결망이 어떻게 공공의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사례이기도 하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태도의 문제다. 자신에게 압수수색이라는 불편한 상황을 안겨 준 정부와 관련된 인사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 목사는 그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정치적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필요한 협력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사적인 감정보다 공적 판단을 앞세웠다. 이번 일은 한 가지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종교는 배타적으로 작용할 때는 벽이 되지만, 협력의 매개가 될 때는 단절된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목회자의 종교관은 종교의 사회적 소명을 다시 확인시켜주었고, 우리 사회가 종교를 바라보는 방식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종교는 정치와 싸워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국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영역을 메우는 민간 외교자산인가. 적어도 이번 면담에서 연결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갈등이 격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종교가 보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보여 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영훈 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