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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의공정과효율] 가격지정인하명령, 득보다 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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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상 가능하지만 발동된 사례 없어
정부가 가격결정권 쥐면 시장기능 근본 훼손

이란 전쟁으로 기름값이 치솟자 비상이 걸렸다. 치솟은 기름값이 다른 가격 상승으로 번지는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 극약처방인 기름값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1차 중동전쟁 시 기름값에서 비롯된 살인적인 물가를 잡기 위해 1973년 물가안정법이 제정되고 최고가격제가 도입된 적이 있다. 최고가격 지정에 따라 생산 기피·이중가격 형성·매점매석(사재기)으로 시장 기능이 왜곡되고 인플레 심리가 만연되는 등의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최고가격제로 물가를 일시적으로 잡을 수 있지만 가격 결정의 왜곡에 따라 시장 기능이 훼손되었다. 가격 기능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물가를 잡는 현명한 방법은 경쟁 활성화다. 1980년 말 공정거래법을 제정한 이유다.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 연세대 경제·법무대학원 겸임교수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 연세대 경제·법무대학원 겸임교수

1970년대 중동전쟁에 따른 미국의 물가를 잡은 요인 중 하나가 엄격한 담합 집행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외적 요인으로 비용이 상승하더라도 경쟁이 살아 숨 쉬면 기업들은 가격 인상을 자제하거나 최소한으로 인상한다. 최근의 설탕·밀가루·전분·삼겹살 가격담합에서 보듯이 국민생활밀접품목의 가격 인상 주범이 바로 담합이다.

시장경제의 가장 암적인 담합은 엄벌해야 마땅하다. 최근 담합 가담 기업에 대하여 가격인하명령을 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특정 비율 이상 또는 특정 가격으로 인하를 명령해야 한다는 가격지정인하명령 언급도 나오고 있다. 급하더라도 시장 기능의 작동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내에서 벌을 줘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비용의 변동이나 수급의 변동에 비해 현저히 가격을 인상할 경우 가격인하명령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집행 45년 역사상 가격 남용 행위에 대해 가격인하명령이 발동된 적이 없다. 정부가 시장가격에 개입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경쟁법에는 가격 남용에 관한 규정 자체가 없다. 있더라도 우리와 같이 가격 남용에 대한 규제 사례가 거의 없다. 빌 배어 미국 반독점차관보는 “미국 반독점법은 과도한 가격 설정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합법적인 독점자는 자신들 마음대로 독점가격을 설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정부의 시장가격 개입을 경계했다.

담합에 대한 시정 조치에는 가격인하명령 규정이 없다. 담합에 대한 시정 조치로는 중지명령과 향후 금지명령이 가능하다. 현재 진행 중인 담합을 중단하고 향후 유사한 담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담합으로 인상한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가격재결정명령은 가능하다. 2006년 밀가루 담합 시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재결정명령을 내렸다. 업체들이 가격재결정명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자 대법원은 담합 가격이 유지되고 있는 경우 가격재결정명령은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가격재결정명령은 공정위의 처분에 따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게 되므로 정부가 가격결정권에 직접 개입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격지정인하명령은 정부가 기업을 대신하여 가격결정권을 가지게 되므로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어야 하는 시장경제의 근본 원칙에 배치된다. 공무원이 기업의 비용구조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기업별 이윤율도 결정해 주어야 하나 가능하지도 않다. 지정된 가격 인하명령에 따라 가격을 내린 후 다시 올릴 수 있는지, 올릴 수 있다면 언제부터 올릴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올릴 수 있는지 등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 연세대 경제·법무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