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원시인/자청/필로틱/2만2000원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현대 인류는 역사상 가장 편리하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불안과 우울, 무기력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저자 자청의 신작 ‘완벽한 원시인’은 이러한 역설에서 출발한다.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서적을 탐독하며 인간의 이상적인 삶을 연구해온 저자는 “현대인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10만년 전 설계된 뇌와 현대 환경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이를 ‘진화적 불일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보더콜리를 예로 든다. “하루 60㎞를 달리도록 설계된 양치기 개를 25평 아파트에 가두면 어떻게 될까. 밤새 짖고, 가구를 물어뜯고, 제 꼬리를 쫓으며 이상 행동을 보인다. 수의사는 이를 행동장애로 진단하겠지만, 사실 이 개는 지극히 정상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불안과 무기력, 번아웃도 다르지 않다.”(서문)
그는 이어 “인간의 유전자는 10만년 전 원시 인류와 99.9% 동일하다”며 “뇌는 여전히 맹수를 피하고 사냥하라고 외치지만, 우리의 몸은 콘크리트 빌딩과 형광등 아래 의자에 묶여 있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 알림은 위협 신호로, 지하철 인파는 포위 상황으로, 움직이지 못한 하루는 부상 상태로 인식되며 뇌는 끊임없이 경고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적 불일치’ 속에서 의지로 버티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소모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선호하는 활동을 ‘원시인 모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연 속에서 몸을 쓰고, 경쟁과 전략,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합된 활동일수록 뇌는 강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테니스나 축구 같은 운동은 자연광, 이동, 반응 속도, 전략적 판단이 동시에 작동하며 뇌를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깨운다.
반대로 노력 없이 보상이 반복되는 활동, 예컨대 반복 클릭형 게임이나 무한 스크롤 콘텐츠는 도파민 시스템을 소모시키고 집중력을 약화시킨다.
그 결과 현대인의 뇌는 최대 출력으로 작동하지 못한 채 70%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뇌의 혈류량과 미토콘드리아 밀도 등 핵심 요소들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페라리에 경유를 넣어 놓고 왜 달리지 않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의지’가 아닌 ‘버튼’의 문제로 설명한다. 10만년 전 인간은 햇빛 아래에서 이동하고 사냥하며 협력하는 삶을 살았고, 우리의 뇌는 이러한 환경에 맞게 설계됐다. 그러나 현대인은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 앉아 보내며 스마트폰과 인공조명 속에서 생활한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불면, 우울, 집중력 저하 같은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아침 빛’을 든다. 원시인은 아침에 약 10만럭스에 달하는 태양빛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현대인은 실내 조명 아래에서 고작 수백 럭스 수준의 빛을 접한다. 이 차이가 뇌의 세로토닌 시스템과 수면 리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우리 몸과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요소로 수면, 물, 호흡, 걷기, 영양, 운동, 관계 등 15개의 ‘버튼’을 제시한다. 가장 기초 단계는 생존 버튼인 수면, 물, 호흡이다. 인간의 뇌는 충분한 수면과 수분, 안정적인 호흡 상태에서 비로소 정상적인 판단과 감정 조절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스마트폰 사용과 과도한 업무로 수면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다음 단계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항상성 버튼이다. 햇빛, 걷기, 자연식 중심의 영양 섭취가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은 햇빛 속에서 움직이며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이지만, 실내 생활과 가공식품 위주의 식습관은 이 기본적인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 번째는 성장 버튼이다. 이는 인간의 몸과 정신을 단련하는 자극 요소를 의미한다. 저자는 일부러 불편함을 경험하는 ‘의도된 불편함’, 근력 운동, 고강도 운동 등을 강조한다. 원시시대 인간은 추위와 배고픔, 위험 속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했지만, 편리함이 극대화된 현대 환경은 인간의 회복력과 도전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버튼들이 제대로 작동할 때 인간의 뇌는 안정적이고 강력하게 기능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얼핏 원시인의 삶을 이상화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날카롭다. 인류가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뇌의 본래 기능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높은 지능을 지닌 존재이지만, 여전히 ‘동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났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완벽한 원시인’은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문명을 가장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을 뜻한다. 자신의 본능을 이해하고 이를 억누르기보다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는 ‘완벽한 원시인’이라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