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 면전에서 진주만 공습을 언급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깜짝 놀란 다카이치의 표정이 일본 국내에서 화제로 떠오른 가운데 트럼프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미·일 정상회담 하루 뒤인 20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다카이치의 방미를 동행 취재하고 회담 당시 백악관 내 트럼프 집무실에도 있었던 요미우리(讀賣)신문 기자는 “(트럼프 발언에) 총리는 분명히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며 “눈이 커지면서 미소가 사라지고 상체를 뒤로 젖힌 채 두 손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어 “갑작스러운 진주만 언급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고 덧붙였다.
어느 일본 시민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그래도 트럼프를 화나게 만들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나이든 시민들 중에는 “트럼프가 일본의 과거 역사적 맥락을 예로 들었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하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이도 있었다.
전날 정상회담 도중 어느 일본 취재진이 트럼프를 향해 ‘왜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에 이란 공격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 2월28일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당시 86세)를 제거한 작전 개시 직전 일본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트럼프는 “우리는 ‘서프라이즈’(surprise·깜짝 놀랄 일)를 원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누가 일본보다 서프라이즈를 더 잘 알겠느냐”며 “당신은 왜 나에게 진주만에 대해 말하지 않았느냐”고 농담처럼 되물었다. 당시 트럼프 집무실에 있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웃음을 터뜨렸으나 다카이치를 비롯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인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이 항공모함 6척을 동원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 미국은 군인과 민간인 등 2400여명이 목숨을 잃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은 이를 계기로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해 일본, 독일 등 추축국들과 싸우게 된다.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1945년 9월2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앞서 미국은 일본이 해상자위대 함정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보내 이란군의 해협 봉쇄에 발목이 묶인 상선들을 호위할 것을 요청했다. 자연히 트럼프의 언급은 다카이치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마당에 굳이 일본이 불편하게 여기는 과거사를 끄집어낸 것은 트럼프의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2차대전 후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일본 정상 앞에서 진주만 공습을 직접 거론하길 삼갔다. BBC는 “진주만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다카이치 총리의 취임 후 첫 미국 공식 방문의 중요한 순간으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