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적 팬덤을 통해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역할 분담을 하는 케이팝 팬들의 ‘선한 영향력’은 환경운동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케이팝 팬들이 주도하는 기후 캠페인 단체 ‘케이팝포플래닛(K-Pop for Planet)’을 만든 김혜경(41·사진)씨는 “기후위기 당사자이지만 소외됐던 청년세대·여성들의 목소리가 케이팝 팬덤이라는 형태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며 “팬들은 강력하고 창의적으로 기후운동을 한다”고 했다.
김씨는 이달 한국인 최초로 2026 내셔널지오그래픽(NG) 33에 선정됐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창립자·선구자 33인을 매년 발표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팬들의 뜨거운 열정을 활용해 기업의 친환경 변화를 압박한다”며 “이들이 한국 연예산업을 겨냥한 이후 블랙핑크 소속사도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단체를 소개했다.
20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만난 김씨는 지금의 활동에 대해 “당사자가 목소리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전문가 중심의 언어로는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당사자들의 일상언어로 전달되면 기후 문제가 와닿는다”고 평가했다.
언론인 출신인 김씨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취재하며 산업화로 인한 환경문제를 인식했다고 한다. 그는 “동일본대지진 때 단순히 쓰나미가 아니라 원전으로 인한 대형 재난이 됐다”며 “원전 사고는 지금도 환경과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민주적인 에너지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환경운동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그린피스와 국경없는기자회를 거쳤고 2022년 오바마재단 아시아태평양 리더로 선정됐다.
언뜻 보기에 관계 없어 보이는 기후운동과 케이팝이라는 주제가 묶인 건 1세대 케이팝 팬이었던 김씨가 3세대 아이돌 팬이었던 인도네시아 대학생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2021년 김씨와 함께 ‘케이팝 포 플래닛’을 창립한 누룰 사리파는 한국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인도네시아에서 석탄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김씨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기업의 파푸아 삼림 파괴를 반대하는 해시태그운동(‘Save the Papua’)을 봤다”며 “케이팝 팬들과 함께 기후운동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 이름으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며 “1세대 아이돌 때에도 구호물품으로 쌀을 보내거나 나무를 심는 일들을 해왔지만 지금은 더 세련되고 강력한 방식이 됐다”고 했다.
10∼20대 여성 활동가들이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기업들과 협상하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씨는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지속 가능성을 위한 음악 서밋’에 활동가들이 성과를 공유했다. 유니버설 뮤직, 콜드플레이·빌리 아일리시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탈탄소 콘서트에 기여한 기관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기업과 국가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2022년 방탄소년단(BTS)이 지속가능 홍보대사로 있는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내 석탄 발전 기반 알루미늄 생산 공급망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아미(ARMY)들이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김씨는 “온라인 서명 등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낸 결과 협약이 해지됐다”며 “전력 시스템 전체를 석탄에 의존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정부 차원의 탈탄소 논의로도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2021년 탈석탄 선언을 한 하나은행이 인도네시아 니켈 프로젝트에 대출 형태의 금융 지원을 규탄하는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산업용 자가 화력발전을 위한 신규 석탄발전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자금이 하나은행에서 나온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현지 환경 파괴로 식수 공급조차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팬들이 공유하고 있다”며 “지드래곤과 안유진 등 아이돌을 모델로 내세우며 친환경 기업을 표방하는데, 공급망 전환에 역행하는 행보를 팬들이 규탄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