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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치욕과 설욕의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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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민족의 경험은 집단 정체성에 새겨져
치욕의 상처는 설욕에 대한 집착과 유혹 낳아

국가 이성이 지배한다는 국제 관계에서 자부심이나 치욕과 같은 감정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주권 국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란을 전격 공격하는 행위는 합리적인가. 미국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평가되는 이란이 무조건의 항복을 거부하고 오히려 전쟁을 확산하는 대응은 제정신인가.

이성을 넘어 감정도 국제 관계에서 무척 중요하다는 프랑스의 원로 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의 시각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데 유용하다. 예전 프랑스 유학 시절 그로부터 역사와 공간을 넓게 보는 시각을 배웠던 만큼 이란 전쟁에 대한 그의 의견이 궁금했다. 르 몽드와 인터뷰에서 그는 한 나라나 민족이 겪은 치욕이라는 역사적 경험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집단 정체성에 깊이 새겨진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치욕이란 국제 관계를 지배하는 핵심적 원칙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대개 굴욕이나 창피로 번역되는 휴밀리에이션(Humiliation)에는 두 요소가 있다. 수치가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면서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면, 모욕은 대개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누르면서 드러내는 업신여김이다. 수치와 모욕이 합쳐져 치욕의 상처를 만들고 이것이 국가 유전자에 깊이 새겨지면 설욕의 집착과 유혹을 낳는다.

강대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조차 이번 전쟁을 설명하면서 1979년 인질 구출 작전 실패라는 미국의 치욕적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그 어떤 대통령도 실현하지 못했던 역사적 설욕을 자신이 나서서 이뤄내겠다고 큰소리쳤다. 온 세상이 우습게 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MAGA 자체가 설욕의 논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년이 넘게 세상의 중심을 자부하면서 강한 지배력을 발휘했던 중국도 19~20세기 충격적인 치욕을 경험했다. 서구 세력과 일본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치욕을 이제는 눈처럼 하얗게 씻어내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치욕과 설욕의 깊은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이해하지 않고서 중국의 대국굴기 전략과 의지를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바디 교수의 분석이 날카롭고 울림을 갖는 이유는 그가 서구와 페르시아 문명의 교차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란 출신이지만 개신교를 믿는 아버지와 프랑스 가톨릭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명과 종교의 다양성을 타고난 학자인 셈이다.

감정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작년 이란 폭격에 이어 올해 다시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적 공격은 이란의 심장에 치욕의 칼날을 깊이 쑤셔 넣는 행위다.

전쟁을 시작하면서 제거한 하메네이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지도자이며, 이란은 신정체제에 대한 민중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아 이슬람의 중심국이라는 문화적 정체성과 자부심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체제 전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오히려 강화로 연결될지 단언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끝으로 바디는 전쟁 관련 논의에서 두 가지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하나는 인간적 고통을 외면하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계산을 앞세워 이해득실만 따지는 후안무치이고, 다른 하나는 신정체제의 야만성이 이들을 공격하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준다고 주장하는 모순이다. 하메네이, 트럼프, 네타냐후는 셋 다 무고한 이란 시민을 학살하는 공범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