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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제5영역] AI에 길들여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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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업무량 늘리자 생산성 되레 후퇴
토큰 소비량 폭증 탓 에너지 수요 급증도 문제

‘스팀팩’이란 게 있다. 좀 엉뚱하지만 스타크래프트나 폴아웃 같은 비디오게임에서 공격 속도를 높이기 위해 쓰는 게임 아이템이다. 군대에서 군인들의 피로와 공포를 지워 전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쓰던 강한 각성제가 모티브다. AI 사용이 점점 늘다 보니 스팀팩을 떠올리게 된다.

올해 초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UC 버클리 연구팀의 연구를 소개했다. AI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였는데 처리하는 업무량도, 업무의 종류도 늘었다. 좋은 일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니 좀 이상했다. 우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더 가져가고 있었다. 한번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자발적으로 일을 늘린 것이다. 점차 생산성은 떨어졌고 번아웃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연구진은 이 현상을 ‘AI에 뇌가 튀겨졌다’(AI brain fry)고 불렀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토큰(AI 사용단위)을 얼마나 쓰느냐가 새로운 경쟁이다. 개발자들이 회사 게시판에서 누가 더 많은 AI 토큰을 썼는지 겨루고, 회사는 넉넉한 토큰 예산을 복지처럼 제공하며 생색을 낸다. 이런 암묵적 부추김이 개발자들에게 쉬는 시간에도 “지금 뭔가 하나 더 돌릴 수 있을 텐데”라는 압박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일을 쉬는 동안 AI가 대신 일하게 만들 수 있다며 흥분한 개발자들은, 역설적으로 AI에게 일을 더 시키려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쉬는 시간을 줄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에너지다. 5년 전을 떠올려보자. 치킨 한 마리를 배달시키면 배달비가 무료였다. 배달 플랫폼들이 점유율 경쟁을 벌이며 투자금을 태우던 때였다. 소비자에겐 천국이었다. 식당도 밀려드는 배달주문 덕분에 코로나19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수료가 오르자 식당 사장들은 분노했고, 소비자들은 배달 음식값이 매장보다 비싸다며 울상이다. 중기벤처부 조사에 따르면 배달 플랫폼 입점 업체의 체감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9.1점에 불과하다.

AI도 마찬가지다. 지금 AI 토큰 비용은 싸다. 최근 3년간 50배가 내렸다. 하지만 토큰 소비량은 계속 폭증한다. 에세이 하나 쓰는 데 3년 전 1만 토큰이 들었다면 최근에는 AI 에이전트를 여러 개 돌려서 하루에 수십억 토큰을 쓰는 경우도 나온다. 개발자 중에는 본인 연봉보다 클로드 토큰 사용료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얘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AI가 다른 소프트웨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는 한 번 만들면 복제 비용이 거의 없는 반면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카카오톡 사용자가 10만명이든 5000만명이든, 메시지 하나 보내는 추가 비용은 가치에 비해 극히 작다. AI는 반대다. 토큰 하나를 처리할 때마다 GPU가 돌고 전기가 소모된다. 사용자 한 명이 늘 때마다 비용이 비례해 올라가니 물리적 재화에 가깝다. AI가 전기 먹는 하마라는 건 말하기 입 아플 정도다. 당장 미국 소매 전기요금이 2019년 이후 42% 올랐다. 골드만삭스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가 2026년과 2027년 인플레이션을 0.1%포인트씩 밀어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은 빅테크 기업과 투자자들이 점유율 경쟁을 위해 이 비용을 흡수한다. 투자금으로 배달비가 무료였던 시절처럼. 배달 음식이 비싸진 지금도 우리는 직접 음식을 포장하러 가지 않는다. 한 번 맛본 AI의 매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주위의 모든 사람이 스팀팩을 쓰며 전투를 벌이는 세상에서 나만 손 놓고 경쟁에서 빠질 수도 없다. 이 어렵고 피곤한 상황에서 우리 앞에 등장할 새 청구서에는 과연 어떤 가격이 적혀 있을까.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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