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을 앞두고 대규모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기존 쓰던 ‘태양절’ 명칭을 사용하지 않아 ‘김정은 시대’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신호로 해석된다. 북한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김일성 동지 탄생 114돌에 즈음해 제34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평양에서 진행된다”고 전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지난 22일 보도에서 태양절을 “경사스러운 4월의 명절”로 표현했다. 친선예술축전과 화초축전 등 기존 기념행사는 그대로 유지했으로 표현과 의미에 변화를 줬다.
◆김정은 띄우고 ‘태양절’ 뺐다…北 상징·서사 변화
최근 북한 매체 보도는 정책 성과와 국가 발전을 김 위원장의 결단이나 지도력과 연결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선대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김 위원장의 성과임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다.
지난 2월 열린 9차 노동당대회에서 리일환 당 비서국 비서는 김 위원장의 총비서 선거 관련 제의에서 “반만년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그리고 해방후 75년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위대한 승리를 이룩했다”고 언급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포함한 75년 역사와 김 위원장의 성과를 구별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발표한 ‘지방발전 20x10 정책’도 실질적인 생산 결과를 냈다는 점을 선전하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방공업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생산량이 증가했다고 지난해 10월 보도했다. 22일에는 평양 화성지구 4단계에 1만 세대 집을 건설했다며 김 위원장의 지도력과 연결했다.
김 위원장의 독자 우상화 작업이 가시화된 때는 2024년이다. 태양절 용어가 사라지기 시작한 때도 그해다. 김일성을 기리는 ‘주체 연호’는 체제 출범 10년을 넘긴 2024년 10월부터 공식 성명과 담화에서 주체연호가 빠진 정황이 포착됐다. 주체 연호는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삼은 것으로 김일성 3주기인 1997년부터 북한이 도입해 왔다.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2월16일)’을 맞아 지난 2월 ‘2·16 경축’같은 중립적 표현을 쓰기도 했다.
상징물을 철거하거나 교체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의 통일 유훈을 의미하던 평양의 대형 관문인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2024년 1월 철거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전원회의에 참석한 간부 전원이 김 위원장의 얼굴이 단독으로 그려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나온 모습이 관찰됐다.
◆선대는 남기고 중심은 이동…김정은 체제 재편 가속
북한은 김 위원장 중심의 통치 서사를 강화하기 위해 상징과 인사를 함께 재편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해에도 “위대한 김정은 시대를 빛내는 위훈의 창조자가 되자!”를 대표 구호로 다시 부각했다. 독자적인 김정은 시대를 공식화한 셈이다.
인적 쇄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의 ‘서열 2위’로 평가받으며 북한을 대표해 온 최룡해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22일 물러났다. 대신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조용원이 후임을 맡았다. 박정천 당 비서, 오수용 당 경제정책 총고문, 김영철 당 고문 등이 대의원에서 선출되지 않은 대신 장금철 전 통일전선부장이 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의원은 약 75%를 교체돼 역대급 물갈이를 단행했다.
또한 전 세대의 상징성이 강한 ‘빨치산 2세’ 계열보다 실무형 인물로 구성한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지방발전 현장에 자주 보이는 김덕훈(내각 제1부총리)과 군수 경제에 특화된 노광철(국방상) 같은 실무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들이 전진 배치됐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선대 유산 폐기라기 보다는 우상화의 무게 중심을 김 위원장으로 확연히 이동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강하다. 김 위원장의 집권이 10년을 넘어가며 권력이 안정기에 들어선 상황에서 독자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인 셈이다. 지방발전 20x10 등 경제 건설 성과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