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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 ‘PANDA’ [S스토리-日, 54년 만에 ‘제로 판다’… 속앓이 하는 열도]

마지막 남은 쌍둥이 판다 1월 귀환
다카이치 총리 ‘대만 개입’ 발언 파장
中·日 갈등에 새 판다 대여 소식 없어
도쿄 우에노 동물원·주변 상권 위축

中, 소프트 외교로 ‘털보 대사’ 활용
獨·프랑스·韓 등엔 ‘추가 대여’ 계획
日엔 ‘징벌적 수단’ 활용 사례 될 듯
“사진으로만 봐도 이렇게 귀여운데…. (2011년에 온) 리리, 신신부터는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이제 아무도 없으니 허전하네요.”

 

지난 20일 도쿄 우에노동물원에서 만난 40대 부부는 1972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 있었던 자이언트 판다 15마리를 소개한 전시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2021년생 수컷 샤오샤오와 암컷 레이레이 쌍둥이가 지난 1월27일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판다 사육장은 한 달 반째 굳게 닫힌 상태다. 샤오샤오와 레이레이를 소개하는 전시물 상단에는 ‘중국에서도 건강하게 지내렴’이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새로 붙어 있었다.

 

입장객들은 뒤편 레서판다를 구경하거나 아직 남은 판다 관련 전시물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한 여성이 ‘판다는 생후 18개월이면 홀로서기를 하며 암수 모두 혼자서 생활한다’는 설명을 보고 안도한 듯 “그래도 거기서 외롭지는 않겠구나”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54년 만에 ‘제로 판다’ 된 일본

 

일본은 1972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 선물로 판다 캉캉과 란란이 들어온 뒤 한때 중국, 미국에 이어 판다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와카야마현 시라하마의 테마파크 ‘어드벤처 월드’에 있던 판다 4마리가 중국으로 돌아갔고, 우에노동물원의 쌍둥이 판다마저 반환되면서 54년 만에 ‘제로 판다’ 국가가 됐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정문 앞에 ‘현재 우에노동물원에서 자이언트 판다는 전시되고 있지 않다’는 안내 문구가 달려 있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정문 앞에 ‘현재 우에노동물원에서 자이언트 판다는 전시되고 있지 않다’는 안내 문구가 달려 있다.

동물원 내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판다의 마지막 공개일이었던 지난 1월25일에는 24.6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관람권을 손에 쥔 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곳곳에서 판다 장식이나 머리띠를 한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관람권 당첨은 안 됐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사이타마현에서 왔다는 50대 여성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제 더는 못 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나중에라도 중국에 가서 쌍둥이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판다가 떠나고 50여일이 지난 이날은 동물원 개원 144주년 무료 입장일이라 인파가 꽤 많았음에도 판다 팬을 만나기 어려웠다. 기념품 판매장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판다 관련 상품의 종류나 수도 줄어 있었다.

 

판다는 우에노역 주변 상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판다 도안이 들어간 화과자, 화장품 등이 대표 상품이고 안경점에도 안경을 씌운 판다 인형이 놓여 있다. 이곳은 2008년 우에노동물원의 유일 판다였던 링링이 죽은 뒤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동물원의 연간 입장객 수가 60년 만에 처음으로 300만명을 밑돌면서 상권도 덩달아 위축됐다. 후타쓰기 다다오 우에노관광연맹 명예회장은 교도통신에 “유동인구의 감소를 피부로 느꼈다”며 “우에노의 간판인 판다를 잃는 무서움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온 동네가 판다 유치 활동을 벌인 끝에 리리와 신신이 새로 들어온 2011년 동물원 입장객은 470만명으로 회복했고 주변 상권도 활기를 되찾았으나 다시 침체를 마주하게 됐다.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입장객들이 지난 20일 판다 사육장 앞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우에노동물원을 비롯한 일본에는 현재 판다가 한 마리도 없는 상태다.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입장객들이 지난 20일 판다 사육장 앞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우에노동물원을 비롯한 일본에는 현재 판다가 한 마리도 없는 상태다.

◆“판다는 지정학적 동물”

 

지금은 15년 전처럼 판다가 다시 오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시사 발언에 자극받은 중국이 관광·유학 자제령에서 시작해 희토류 통제 카드까지 꺼내 드는 등 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중국이 판다를 ‘소프트 외교’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과 판다 임대 협상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한 외교관은 아사히에 “판다가 있는 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당신은 나의 최고의 친구’라는 말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선택받은 나라임을 뜻한다”고 말했다. 2017년 판다 두 마리를 대여받은 인도네시아가 그런 사례다. 인도네시아는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요충지에 있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서 일본 대신 중국을 선택한 지 2년 만에 서자와주 동물원에 판다를 들일 수 있었다.

 

미국과는 줄타기가 이어졌다. 1972년 미·중 데탕트(긴장완화)로 처음 판다가 들어온 이래 미국에는 최대 15마리가 있었으나 2023년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제로 판다’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당시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의를 계기로 판다 외교가 재개됐고, 2024년 샌디에이고 공원에 판다 두 마리를 보냈다. 21년 만에 이뤄진 신규 임대는 중국이 미국과 안정적 관계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됐다.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내 기념품샵에 지난 20일 판다를 소재로 한 인형, 가방 등이 진열돼 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내 기념품샵에 지난 20일 판다를 소재로 한 인형, 가방 등이 진열돼 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방중을 앞둔 지난 1월 독일에 판다 두 마리를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방중한 지난해 12월에는 프랑스 동물원의 판다가 반환되면 새로운 한 쌍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이재명 대통령의 1월 방중 때는 한국에 새로운 판다를 대여하기 위한 협의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 집권 자민당 모리야마 히로시 전 간사장은 지난해 4월 방중했을 때 판다 대여를 요청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전한 바 있지만, 그 이후로 양측 간 판다 관련 대화는 뚝 끊겼다. 54년 만에 판다가 사라진 일본의 현재는 중국이 판다를 ‘징벌적 외교’ 수단으로도 삼는 결정적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