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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동에 발묶인 사이… ‘손익계산’ 따지며 미소 짓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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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대화 강조… 중립 속내는

비축유 최대 1년치… 안전판 튼튼
트럼프 방중 연기 관세 대응 ‘숨통’
대만해협 미군 전력 분산도 이점

러는 중동 혼란 틈타 우크라 공습
젤렌스키 “美, 돈바스 포기 압박”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의 대응은 묘하게 차분하다. 지정학적 라이벌인 미국이 거액의 비용을 쏟아부으며 공격을 이어가는 동안 중국은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뒷짐을 진 채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양새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중국 역시 중동발 에너지 공급망 불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타격이 다른 국가들보다는 작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윌리엄 피구에로아 중국·이란 학자는 SCMP에 “지역을 집어삼키는 대규모 충돌이 아닌 한, 중국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수년 전부터 대만과의 갈등 등 극한 상황을 가정해 에너지 안전판을 구축해왔다. 중국의 비축유 규모는 기밀이지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소비량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중국 신차 시장의 과반을 점유한 빠른 전기차 전환과 높은 석탄 의존도 역시 국제 유가 파동 속에서 중국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애초 이달 말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이 연기된 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압박을 마주하기보다 전쟁이라는 변수에 따른 까다로운 현안을 차분히 조율할 사전 준비 시간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천치 칭화대 교수는 중국이 이란 전쟁을 ‘트럼프가 만든 문제’로 보고 있고, 미·중 관계 안정화라는 최우선 과제가 이 문제에 의해 가려지거나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회담 연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중동에 발이 묶일수록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 투입할 미군의 전력과 집중력이 분산된다는 점도 중국에는 나쁘지 않은 구도다. 또 이란산 석유 대부분을 사들이며 우호 관계를 맺어온 중국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이란의 항구, 고속도로 등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대외적으로 중국은 철저히 중립과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란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중동 지역 및 유럽 국가들과 소통할 때마다 미국·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을 비판하면서도 이란이 관련된 무고한 민간인 살상을 함께 거론하며 균형을 맞췄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이 중동에서 대리전을 치르거나 특정 국가를 군사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없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제된 공식 입장과 달리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미국의 정치적 쇠퇴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정책을 조롱하는 메시지가 범람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평소 SNS를 통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게시물 유포를 굳이 막지 않으며 미국의 위신 추락을 자국 체제의 정당성 홍보 수단으로 묵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중동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자 러시아는 대규모 봄 공세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SCMP는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를 향해 약 1000대의 드론과 미사일 34발을 발사했는데, 이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포격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종전 합의를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중재안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전체를 러시아에 내줘야 안전보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제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종전의 조건으로 고수해온 핵심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돈바스에서 철수하면 우리가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우리의 (돈바스에 있는) 요새 시설이야말로 안전보장 수단 중 하나”라며 “철군은 미래 세대를 배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