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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악명’ 이근안, 88세로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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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시기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88)이 숨졌다.

 

26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근안은 전날(25일) 사망해 현재 서울 동대문구 소재 동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상태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5시20분으로 예정됐다.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이 88세 나이에 사망했다. 뉴시스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이 88세 나이에 사망했다. 뉴시스

이근안은 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공안 사건을 수사했던 인물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강압 수사와 함께 고문 등 가혹행위를 주도해 고문기술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고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은 고문과 옥살이 후유증으로 2011년 사망했는데, 그 역시 1985년 9월4일 민청련 결성을 놓고 구속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으로부터 고문을 받은 바 있다.

 

민주화 이후엔 이근안이 받아낸 자백에 대한 평가도, 그의 신분도 달라졌다. 1988년 수배가 내려지자 그는 12년간 도피하다 1999년 자수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또 이근안이 관여한 공안 사건 중 일부도 재심에서 조작 정황이 인정돼 무죄가 선고됐다. 그의 가혹 행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허위 자백해 옥살이한 납북어부 정규용씨는 38년 만인 2014년 무죄를 확정받은 바 있다. ‘서울대 무림 사건’ 역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당시 위원회는 이에 대한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이근안은 2006년 출소했고, 이후 종교 활동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과거 고문 사실을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피해자 및 시민사회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논란이 이어졌다.

 

이근안이 지속적으로 해온 ‘정당화’ 발언 때문이다. 이근안은 2010년 한 언론과 인터뷰 때 고문을 두고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012년 12월14일엔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를 열고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 애국이 아니면 누가 목숨을 내놓고 일했겠느냐”며 “세월이 지나 정치형태가 바뀌니까 내가 역적이 되고 이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