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7000보 채우셨어유? 벌써 500원 벌었네유"
충북 괴산군 동진천 산책로에 오가는 이들의 대화가 귀에 쏙 들어온다. “7000보에 500원”이란다. 괴산읍 서부리 사호정교에서 정용리 동진천교까지 이어지는 2.2km 구간 동진천 산책로에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주민들이 줄을 잇는다. 이곳의 산책하는 모습은 다른 곳과 사뭇 다르다. 걷는 도중 손목에 찬 지능형 손목시계(스마트워치)나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는 주민이 많다. 괴산군이 추진 중인 ‘걷다보니 통장부자’ 사업이 ‘걷테크(걷기+재테크)’ 열풍으로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어르신부터 청년층까지…낮과 밤을 잇는 ‘걷테크’
‘걷테크’ 열풍은 다른 곳에서도 불고 있다.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게이트볼장은 최근 ‘용돈 버는 재미’까지 더해지며 활기가 넘친다. 경기에 집중해 이리저리 걷다 보면 어느새 목표치인 7000보를 훌쩍 넘긴다. 운동의 즐거움에 더해진 ‘하루 500원’의 보상은 어르신들에게 성취감까지 안겨준다. 괴산읍 신항리 이희열(76)씨는 “시니어들이 건강을 위해 늘 운동하지만 ‘걷다보니 통장부자’라는 프로그램으로 실제 돈까지 적립되니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참여의 물결은 청년층으로도 확산했다. 야간이 되면 퇴근한 청년들이 모여 결성한 러닝 동아리 ‘자연울림 뛰산’의 발걸음이 동진천이나 운동장 등을 울린다. 정승환 동아리 회장은 “혼자 뛸 때는 금방 지치기도 했지만 지역화폐 적립금이 쌓이는 걸 보면 꾸준히 실천할 동기가 생긴다”며 “적립금으로 운동 후 동료들과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건강 개선 효과도 입증되고 있다. 괴산읍 능촌리 임옥출(68·여)씨는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걷다 보니 한 달에 만원이 들어왔다”며 “몸도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까지 건강해졌는데 용돈까지 생기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전했다.
◆건강과 경제의 선순환…“경제 순환과 예방적 행정”
군의 이 사업은 하루 7000보를 걸으면 500원, 한 달 최대 1만원을 지역화폐(괴산사랑상품권)로 돌려주는 생활 밀착형 보상 정책이다.27일 군에 따르면 도입 첫 달인 지난달에만 군 인구의 약 9%인 3423명이 참여했고 이달 현재 참여율은 이미 10%를 돌파했다.
군 관계자는 “주민들의 성원이 너무 뜨거워 애초 매달 20일까지만 운영하려던 것을 다음 달(4월)부터는 한 달 내내 운영하기로 하고 군비를 확대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도 인기다. 걷기로 받은 금액을 지역화폐로 사용하면서 소비가 늘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어르신들이 ‘걷기로 번 돈’이라며 물건을 사 가실 때 기분이 좋아진다”며 “지역화폐 사용이 늘면서 전통시장에도 활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이 이토록 ‘걷기’에 진심인 배경에는 절박함이 있다. 괴산군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 3만7774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이 1만6084명으로 42.6%에 달한다. 초고령사회로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 증가가 과제였다. 여기서 군은 ‘예방 중심 행정’으로 눈을 돌려 이 사업을 시행했다. 송인헌 괴산군수는 “무작정 보조금을 주는 것보다 스스로 건강을 챙길 동기를 부여하다 보니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미래를 위한 사회비용도 절감시킬 수 있다”라며 “적은 금액 같아도 수천 명의 소비가 지역 내에서 이뤄지니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 군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