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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열면 한국 뒤집어져”…참치 팔던 박왕열, 어떻게 ‘마약왕’ 됐나 [사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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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서 한국인 3명 살해 뒤 도주
교도소서 마약 유통 조직 진두지휘
텔레그램 기반 ‘바티칸 킹덤’ 구축
9년 만에 한국 송환…수사 본격화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현지 교도소에서 국내 마약 유통을 지휘해온 이른바 ‘마약왕’ 박왕열(47)이 현지에서 검거된 지 9년 만에 한국으로 전격 송환됐다. 박씨는 체포 직전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서 어떻게 범죄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마약왕’ 박왕열이 지난 27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왼쪽은 2011년 박씨가 대표로 있던 수산물 수입 유통회사가 생참치 해체쇼를 진행한 모습. 뉴시스·뉴스1
‘마약왕’ 박왕열이 지난 27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왼쪽은 2011년 박씨가 대표로 있던 수산물 수입 유통회사가 생참치 해체쇼를 진행한 모습. 뉴시스·뉴스1

 

◆ 박왕열, 한국 전격 송환 뒤 구속…일단 ‘30억’ 혐의만

 

28일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등에 따르면 의정부지법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박씨에 대해 전날 “증거 인멸과 도망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씨는 같은 날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지난 25일 송환 당시 착용했던 흰색 상·하의와 회색 겉옷 등 동일한 옷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필로폰 양성 반응 나왔는데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서 투약한 거냐”, “마약 공급은 어디서 받았냐”, “필리핀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냐” 등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법정으로 들어갔다.

 

이번 구속영장에서 경찰은 일단 밀수 2건과 30억원 상당의 마약 국내 유통 혐의 등만 적용했다. 박씨는 2024년 6월쯤 공범에게 지시해 필리핀에서 필로폰 1.5㎏을 커피봉투에 은닉, 항공편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반입하는 방식으로 밀수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24년 7월쯤에도 불상의 외국인을 통해 남아공에서 필로폰 3.1㎏이 담긴 캐리어를 공범에게 전달, 항공편을 통해 김해공항으로 반입하는 방식으로 밀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마약왕’ 박왕열이 지난 25일 한국으로 송환돼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송되고 있다. 인천=뉴스1
‘마약왕’ 박왕열이 지난 25일 한국으로 송환돼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송되고 있다. 인천=뉴스1

 

영장에 담긴 범죄 사실은 박씨가 저지른 전체 범죄 규모의 극히 일부일 것으로 예상된다. 6개월 임시인도 기간 박씨의 여죄가 얼마나 드러날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경찰은 2019년 11월부터 2020년까지 국내 공범에게 지시해 서울·부산·대구 일대 소화전·우편함에 마약류를 은닉해 판매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공범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경찰이 확인한 박씨의 국내 밀수·유통 마약류는 필로폰 약 4.9㎏, 엑스터시 4500여정, 케타민 약 2㎏, 대마 3.99g으로 시가 30억원 상당에 달한다. 경찰의 추가 수사에 따라 마약 유통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정부와 필리핀 사이 협상에 따라 임시인도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 참치 사업가서 범죄자로…‘사탕수수밭 사건’ 뭐길래

2011년 수산물 수입 유통회사 대표로서 언론과 인터뷰 중인 박왕열. KBS 보도화면 캡처
2011년 수산물 수입 유통회사 대표로서 언론과 인터뷰 중인 박왕열. KBS 보도화면 캡처

 

박씨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평범한 수산물 유통 업체 사업가였다. 필리핀에서 공수한 생참치를 국내 백화점에 납품하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참치 해체쇼’를 선보이는 등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사업이 기울고 사기 사건을 겪으면서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조원대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인 IDS홀딩스에서 모집책으로 활동하다 경찰 수사망에 오르자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필리핀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던 박씨는 2016년 10월 한국에서 150억원대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도피 중이던 남녀 3명에게 접근했다. 박씨는 도박 수익금 분배 문제로 갈등을 빚다 필리핀 팜팡가주 한 사탕수수밭에서 이들을 결박한 뒤 총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피해자들이 소지했던 100억원대 자금은 박씨 손에 들어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 유명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이다.

 

박씨는 이 사건으로 필리핀에서 체포됐으나 수감 중인 2017년 3월 탈옥에 성공했다. 3개월 뒤 다시 붙잡혔지만, 2019년 10월 법정 출석 과정에서 두 번째 탈옥을 감행해 1년간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텔레그램을 통해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국내에 하부 조직 ‘바티칸 킹덤’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다시 붙잡혀 복역한 뒤에도 마약 유통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수감 당시 만난 동남아 3대 마약왕 ‘사라 김’으로부터 유통 네트워크도 전수받았다. 그렇게 필로폰과 엑스터시, 케타민, 합성 대마 등 수백억원대의 동남아시아산 마약이 박씨를 통해 한국으로 밀반입됐다.

2016년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이 살해·유기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 현장.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2016년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이 살해·유기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 현장.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마약 투약 혐의로 수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재벌가 3세 황하나(38)씨도 박씨의 공급망을 통해 마약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마약 조직으로 몸집을 키운 바티칸 킹덤의 총책 이모(31·텔레그램명 바티칸 킹덤)씨는 박씨로부터 공급받은 마약을 온·오프라인에서 유명인들에게 판매했다. 황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던 2020년 바티칸 킹덤을 통해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다음 해 1월 황씨와 함께 구속된 이씨는 징역 10년이 확정돼 복역 중인 상태다.

 

◆ 필리핀서 호화 ‘옥중 지휘’…최종 인도 가능할까

 

2020년 10월 필리핀 라구나주에서 세 번째로 붙잡힌 박씨는 2022년 필리핀 대법원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뉴빌리비드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박씨에게 이곳은 또 다른 마약 사업 공간일 뿐이었다. 박씨가 수감 중에도 마약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엔 필리핀 교도소의 허술한 관리 체계가 꼽히기도 한다. 그는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에어컨이 완비된 독실에서 ‘황제 생활’을 누렸다.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해 국내 조직원들에게 비대면 ‘던지기’ 수법으로 실시간 지시를 내리는 등 옥중 경영을 이어왔다. 현지 단속 과정에서 교도소 내부에 초호화 빌라, 스파 욕조, 운동시설 등이 갖춰진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4월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으로 필리핀에 수감된 ‘마약왕’ 박왕열 옥중 인터뷰 모습. 웨이브xJTBC ‘악인취재기’ 방송화면 캡처
2022년 4월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으로 필리핀에 수감된 ‘마약왕’ 박왕열 옥중 인터뷰 모습. 웨이브xJTBC ‘악인취재기’ 방송화면 캡처

 

박씨가 체포 직전 마약을 투약한 정황도 포착됐다. 수감 중에도 마약을 했다는 뜻으로, 박씨가 황제 투옥 생활을 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국내에 송환된 후 진행된 박씨 소변 간이시약 검사 결과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박씨는 조사 과정에서 필로폰 투약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그의 호화롭던 교도소 생활은 정부의 강력한 송환 의지에 결국 막을 내렸다. 법무부는 2017년부터 필리핀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으나 필리핀 측은 자국 재판과 형 집행을 이유로 사실상 거절해 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한국-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직접 임시 인도를 요청했고,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화답하며 강제 송환이 성사됐다. 이에 따라 한국 법무부·외교부·국정원·검찰청·경찰청이 필리핀 당국과 긴밀하게 협의한 끝에 송환을 요청한지 약 1개월 만에 박씨를 임시인도받았다.

‘마약왕’ 박왕열이 지난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마약왕’ 박왕열이 지난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박씨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2023년 10월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면회를 온 JTBC 기자에게 “(내가) 입을 열면 (대한민국이) 한번 뒤집어진다. 검사 중에도 옷 벗는 놈들이 많을 것”이라며 수사 기관을 조롱했다. 방송 송출 거부 의사에도 보도가 나가자 해당 기자를 살해하겠다는 협박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5일 입국 당시 인천국제공항에서 돌연 취재진 쪽을 향해 “넌 남자도 아녀”라며 시비를 건 대상도 해당 기자였다고 한다.

 

당국은 구속 수사를 통해 그의 구체적인 범행 경위와 마약 거래 규모 등을 파악할 방침이다. 그가 실제 국내에서 형을 살게 될지는 미지수다. 임시인도는 범죄인인도 청구국의 형사절차 진행을 위해 피청구국이 자국의 재판·형 집행 절차를 중단하고 청구국에 임시로 인도하는 제도다. 원칙적으로 관련 수사와 재판이 끝나면 필리핀으로 돌아가 현지에서 내려진 형기를 마쳐야 한다. 박씨가 필리핀에서 받은 형량은 장기 징역 60년인 만큼 사실상 국내에서 받은 형은 집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법무부와 외교부 등 우리 정부가 필리핀과 협의를 통해 박씨를 최종 인도 받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