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4월 중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할 것’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으나, 정작 영국과 미국 두 나라 정부는 공식 발표를 계속 미뤄 여러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국내에선 미국·이란 전쟁 등을 이유로 국왕의 방미를 미루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올해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할 외교 이벤트로 찰스 3세 부부의 국빈 방미를 추진해 온 미국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워런 스티븐스 주영 미국 대사는 전날 런던 상공회의소에서 연설한 뒤 취재진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찰스 3세의 방미 일정을 묻는 질문에 스티븐스 대사는 “아직 영국 국왕의 방미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확인을 거부했다.
다만 스티븐스 대사는 “영국 국왕의 방미가 성사될 것으로 여긴다”며 “매우 의미있는 방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은 영국 국왕이 미 연방의회를 찾는다면 상·하 양원 연설을 주선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찰스 3세의 미국행(行)을 바라보는 영국 국내 여론의 악화에 대해 스티븐스 대사는 “만약 (국빈 방미를) 취소하거나 연기한다면 실수(mistake)가 될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스티븐스 대사는 정통 외교관 출신이 아니다. 금융 서비스 업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그는 지난 2024년 대선 당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캠프에 100만달러(약 15억원) 이상을 후원했다. 이에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보은(報恩) 차원에서 스티븐스를 미 외교가의 핵심 요직인 주영 대사로 발탁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2025년 9월 찰스 3세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으로 방문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찰스 3세 부부의 국빈 방문을 초대했다. 마침 2026년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 2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한때 미국을 다스렸던 영국 국왕이 미국에 직접 가서 미국 독립을 축하하는 것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영국인들 사이에는 반미(反美) 감정이 부쩍 고조됐다.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미국 소유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영국 등 유럽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이 영국 등 동맹국들과의 상의 없이 이란을 공격한 행위 또한 비판을 샀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2001년 9·11 참사 후 아프가니스탄을 겨냥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영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의 기여를 폄훼했다.
최근에는 미군의 이란 공습 과정에서 영국의 도움이 충분치 않았다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대놓고 질타하는 등 영국 정부와 국민에게 모욕을 가했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3%만이 ‘찰스 3세의 방미에 찬성한다’고 답한 반면 절반 가까운 49%는 ‘방미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은 이 같은 영국 내 동향을 매우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 사업에 재를 뿌리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의 한 소식통은 인디펜던트 측에 “만약 영국 국왕의 방미가 취소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분통을 터뜨리며 스타머 총리를 맹비난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