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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현대건설이 GS칼텍스에 베푼 지극히 합리적인 ‘자비’가 쓰라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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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훈 기자] 시계를 약 열흘 전으로 돌려보자. 현대건설과 GS칼텍스가 18일 2025~2026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다. 이날 경기에 임하는 두 팀의 자세는 상반됐다. GS칼텍스는 17일 IBK기업은행이 도로공사를 3-0으로 꺾으면서 현대건설전에 한 해 농사의 ‘풍흉’이 달렸다. 정규리그 일정을 끝마친 흥국생명(19승17패)과 IBK기업은행(18승18패)이 승점 57, GS칼텍스가 18승17패에 승점 54였다. GS칼텍스로선 오롯이 승점 3을 챙겨야만 IBK기업은행을 승수에서 제치고 봄 배구 막차를 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현대건설은 지난 13일 도로공사가 흥국생명을 꺾고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면서 2위가 정해졌기에 GS칼텍스전에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주전인 김다인(세터), 양효진, 김희진(미들 블로커), 자스티스, 이예림(아웃사이드 히터), 카리(아포짓 스파이커), 김연견(리베로)까지 모두 뺐다. 지극히 합리적인 운영이었다. 괜히 주전을 뛰게 했다가 다치게 하면 봄 배구라는 대사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승리가 절실했던 GS칼텍스는 주전을 총출동시켰고, 결국 현대건설을 3-0으로 꺾었다. 승점 57, 19승17패로 흥국생명과 승점, 승수에서 동률이 된 GS칼텍스는 세트 득실에서 앞서 3위로 2020~2021시즌 이후 5시즌 만에 ‘장충의 봄’을 맞이했다.

 

스포츠에 만약은 없다지만, 지난 18일 현대건설이 주전을 총출동시켜 GS칼텍스를 이겼다면, 아니 지더라도 풀세트까지 승부를 끌고가 승점 3을 챙기는 것에 생채기를 내며 GS칼텍스의 봄 배구행을 좌절시켰다면, 지금의 봄 배구 양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대건설이 봄 배구 대비를 위해 베푼 지극히 합리적인 ‘자비’가 잔인하고도 날카로운, 그래서 더욱 쓰라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현대건설은 준플레이오프 단판승부에서 흥국생명을 꺾고 올라온 GS칼텍스와의 플레이오프를 2전 전패로 마감했다. 현대건설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V리그의 산 역사인 양효진의 마지막 봄 배구였기에 이번 플레이오프의 패배는 더욱 뼈아팠다.

 

현대건설은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3전2승제) 2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0-3(23-25 23-25 19-25)로 완패를 당했다. 26일 수원 홈에서 열린 1차전도 1-3으로 패하며 챔피언결정전 진출 확률 0%(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팀 19번 모두 챔프전 진출)에 몰렸던 현대건설은 그 확률을 이겨내지 못하고 2차전마저 허무하게 내주며 봄 배구를 일찍 끝마치고 말았다.

 

현대건설도 GS칼텍스가 실바라는 최고의 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할 것이란 걸 알았다. 다만 오판이 있었다면 봄 배구 모드 실바는 정규리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흥국생명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팀 공격의 50%를 책임지며 42점(공격 성공률 59.15%)를 폭발시키며 예열을 마친 실바는 플레이오프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공격 점유율 49.65%로 팀 공격의 절반을 때려내며 40점(공격 성공률 50%)을 몰아쳤던 실바는 이날도 현대건설 코트를 전후위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서브득점 4개, 블로킹 1개 포함 32점. 공격 성공률은 49.09%였다. 실바가 봄 배구들어 처음 40점 돌파에 실파한 건 3세트에 경기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이번 봄 배구에서 실바는 세트당 평균 10점을 넘기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 중이다.

 

현대건설이 실바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아니었다. 1,2차전 합쳐 7개의 블로킹을 잡아냈다. 다만 GS칼텍스는 실바가 막혀도 실바에게 또 올렸다. 쓰리 블로킹을 상대하는 실바가 투 블로킹을 상대하는 유서연, 레이나, 권민지 등 아웃사이드 히터들보다 훨씬 나은 공격옵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GS칼텍스의 배구를 ‘몰빵배구’, ‘실바칼텍스’라며 폄하하지만, 오로지 승리만이 지상과제인 포스트시즌에선 슈퍼 에이스의 공격 점유율을 극대화해서라도 승리 확률을 높이는 게 맞다. 몰빵배구는 상대에게도 블로킹이나 수비를 더 용이하게 만들기에 위험성이 높은 전술이다. 몰빵배구를 향한 비난과 비판은 한 선수에게 50% 이상을 몰아주고도 패했을 때만 가능하다. 이겼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몰빵배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팀 공격의 50%, 그 이상을 책임져줄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난 에이스와 그런 에이스를 뒷받침하는 동료들의 헌신과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이 동반되어야만 승리로 구현될 수 있다. 

 

현대건설로선 카리의 무릎이 건강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남을 법하다. 시즌 내내 고질병인 무릎 통증을 안고 코트 위에 섰던 카리는 1차전 19점(공격 성공률 32.08%), 2차전 12점(34.62%)로 제대로 된 1옵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카리에게 실바급의 활약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40% 이상 성공률을 가져가줘야만 양효진이나 왼쪽 측면에서의 지원 사격을 통해 화력전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러기엔 카리의 무릎은 성치 못했다.

 

2007~2008시즌에 데뷔해 올 시즌까지 19년을 코트를 지켰던 양효진은 이날 마지막 공식전을 치렀다. 기록은 블로킹 1개 포함 13점. 공격 성공률 63.16%. 전매특허인 블로킹은 1개에 그쳤지만, 양효진스러운 60%가 넘는 공격 성공률로 팀내 최고득점을 책임져줬다.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양효진은 전위 세자리만 뛰면서도 팀 내 최고득점을 해줄 수 있는 1옵션이었다. 이번 플레이오프 패배로는 위대했던 그녀의 19년 간의 업적은 생채기조차 날 수 없다. 정규리그 통산득점 8406점(1위), 블로킹 1748개(1위), 포스트시즌 통산 563점, 블로킹 101개, 컵대회 통산 569점, 블로킹 117개. ‘아디오스 양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