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안, 스마트폰 화면을 새로고침하던 직장인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금 통장 앱 속 숫자는 오히려 파란불을 켜며 내려가고 있었다. 옆자리 승객의 화면에도 하락하는 금 시세 그래프가 똑같이 떠 있었다. ‘안전자산이라더니 왜 이러지?’라는 의문이 번지는 순간이다.
최근 두 달 사이 금값이 약 15~16% 하락하며, 약 10조원 규모 개인 자산이 변동성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금시장의 연간 거래대금은 약 5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개인 투자자 자금이다. 여기에 은행권 추산 금 통장 잔액 약 5조원 수준을 더하면, 직·간접적으로 약 10조원 안팎의 가계 자산이 국제 금 가격 변동성에 노출된 구조다.
◆112만원 믿었는데…두 달 만에 하락 전환
이달 27일 한국금거래소 기준 순금 1돈(3.75g) 가격은 94만원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지난 1월 말 112만원 수준에서 형성됐던 가격이 불과 두 달 만에 약 15~16% 하락한 셈이다.
이는 1000만원을 투자했을 경우 약 150만~160만원 수준의 평가 손실이 발생한 것과 유사한 체감이다. 단기간 가격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구간으로 해석된다.
국제 시세도 비슷한 흐름이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금 선물 시장에서는 일부 고점 구간에서 5000달러에 근접한 가격이 형성된 이후 조정을 받으며 상승분 일부를 반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는 단기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된 국면으로 해석된다.
◆전쟁보다 크게 작용한 변수는 ‘금리와 달러’
이번 금값 조정은 지정학적 위기보다 금리와 달러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의 상대적 매력이 채권이나 예금 대비 약화된 것이다.
특히 미 국채금리가 4%대 중후반 수준을 유지하면서 금 투자 매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여기에 강달러 흐름까지 겹치며 달러 외 통화 기준 투자자들의 매수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이는 금이 항상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자산이 아니라, 특정 구간에서는 위험자산과 유사한 변동성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금 확보 수요…금도 ‘팔리는 자산’ 됐다
전쟁 국면에서도 금값이 하락한 배경에는 ‘현금 확보’ 수요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기관 투자자들이 마진콜 대응 등을 위해 유동성이 높은 금을 우선 매도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한 시중은행 WM본부 관계자는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고 달러 강세가 이어지며 금에 대한 매수 심리가 빠르게 식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포트폴리오 내 금 비중을 10% 내외로 관리하고, 금리 사이클 변화를 확인하는 전략이 거론된다”고 말했다.
당분간 금값 하방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의 수익률보다 자금 유동성과 변동성 관리가 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투자자는 붉게 물든 금 통장 앱을 서둘러 닫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금은 더 이상 ‘무조건 오르는 자산’이 아니라, 관리가 필요한 자산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