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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살리고 보상금 받고… ‘절대 반대’서 ‘건립 사활’ 유턴 [심층기획-지자체 신규 원전 유치전]

영덕·울주, 대형 원전2기 경쟁
대형 산불 후 재건 시급한 영덕
입지 적합성 강조 “행정력 집중”
울주는 ‘군민 염원 릴레이 행진’

경주·기장, 소형SMR 놓고 접전
경주 ‘연구∼제조 생태계’ 강점
市, 설명회 열고 주민 설득 총력
기장은 용지 확보·조기건립 피력

원자력발전소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님비(Not In My Back Yard: 혐오시설 기피 현상) 시설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제발 내 앞마당에 설치해달라는 현상)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기피 시설물이었던 원전의 ‘몸값’이 상승한 데는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 상당한 추가 재정수입이 추가되는 것과 함께 원전 유치로 쏠쏠한 보상금이 생긴다는 주민들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울산 울주군 신규원전 유치 기원을 위한 울주군민 릴레이 대행진 모습. 울주군 제공
울산 울주군 신규원전 유치 기원을 위한 울주군민 릴레이 대행진 모습. 울주군 제공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신규 원전 용지 확보를 위한 공모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원전 유치를 바라는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재명정부는 올해 초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각각 건설하는 내용의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대형 원전 2기는 2037∼2038년 준공이 목표이며 SMR은 2035년 준공 예정이다.

 

한수원은 30일까지 지자체로부터 원전 유치 신청을 받았다. 신청 마감 하루 전인 29일까지 신규 원전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는 경북 영덕군과 경주시,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등 동해안을 인접한 지역 4곳이다. 영덕과 울주는 대형 원전을, 경주와 기장은 SMR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영덕·울주 “대형 원전, 우리 동네로”

 

영덕군은 지난 27일 한수원에 신규 원전 건설 후보부지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영덕군의 최근 군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400명 중 86%가 “원전 유치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영덕군은 기존 천지원전 예정 부지(약 323만㎡)가 이미 입지 검토가 상당 부분 이뤄진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영덕군에 따르면 신규 원전 유치는 단순한 에너지 시설 유치를 넘어 지역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전환점이다. 안정적인 대규모 기반 산업을 유치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정주인구 유입, 연관 산업 활성화 등의 부대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봄 발생한 초대형 산불 이후 지역 재건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원전 유치는 중장기적 복구 전략의 핵심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산불이라는 재난 복구를 넘어 원전이라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지역성장 전략인 셈이다.

 

신규 원전 입지 여건 또한 영덕의 강점 중 하나다. 영덕군은 과거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검토된 바 있어 입지 적합성에 대한 기초 검증이 이뤄졌다. 또 한수원이 전체 검토 부지의 약 18%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만큼 사업 추진의 현실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신청서에 “과거 원전 백지화의 아쉬움을 딛고 다시 도약하려는 군민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며 “영덕이 동해안 에너지 산업의 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은 새울원전이 있는 울주군 서생면 주민을 중심으로 대형 원전 2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울주군은 이달 17일 각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신규 원전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울주군은 신규 원전 유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주민 등 70여명이 참석하는 ‘신규 원전 유치 기원 울주군민 릴레이 대행진’ 행사까지 열었다. 아울러 서생면 한수원 인재개발원 입구에서 울주군청까지 29.2㎞를 도보로 40여명의 회원이 릴레이 형식으로 이동했고 울주군과 울주군의회에 주민 3만3000명의 서명이 담긴 신규 원전 유치 건의안을 제출했다. 울주군 ‘신규 원전 자율유치 서생면 범대책위원회’는 최근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기존 원전 기반 시설과 송전망을 활용할 수 있는 서생면에 신규 원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찬성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규 원전 반대 울산범시민대책위원회’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울산기후위기비상행동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며 반대 기자회견과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회원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15주기를 맞아 탈핵 선언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회원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15주기를 맞아 탈핵 선언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SMR 유치 나선 경주시와 기장군

 

경북 경주시는 SMR 1호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주시는 SMR 유치를 위한 지역 내 긍정 여론을 확산하기 위해 지난 13일 시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시는 또 주민과 환경 단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유치 필요성과 SMR 유치가 지역경제에 미칠 기대 효과를 적극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SMR는 차세대 원전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국내 유일의 SMR 국가산업단지가 조성 중인 경주시는 지난 25일 한수원 본사를 방문해 SMR 1호기 유치 공모 신청서를 제출했다. 경주 SMR 유치단 관계자는 “경주는 이미 SMR 국가산업단지와 문무대왕과학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어 연구와 실증, 제조, 운영을 잇는 전(全)주기 산업 생태계가 완벽히 구축된 유일한 도시”라고 유치 당위성을 피력했다.

 

이번 공모는 정부와 한수원이 공동 추진하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및 실증 사업의 핵심 단계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의 연구개발(R&D) 역량과 SMR 국가산단의 제조 기반을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시는 특히 SMR 1호기 유치를 기점으로 에너지 산업 클러스터를 완성해 글로벌 SMR 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최혁준 경주시장 권한대행은 “SMR 1호기 유치는 경주의 100년 먹거리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사업”이라며 “한수원 및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경주가 최적지임을 증명하고, 유치 확정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월성원전 전경
경주 월성원전 전경

부산 기장군도 SMR 건립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군은 군의회 동의를 확보함에 따라 지난 27일 한수원 본사를 직접 방문해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고리원자력본부가 있는 기장군은 본부 내 고리원전 7·8호기 건설이 예정됐던 용지가 남아 있어 주민 이주 등 절차 없이 빠르게 SMR 건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2017년 고리1호기 영구 정지 이후 기존 송전망에 여유가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기장군은 원전의 설계부터 건설과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를 완성한 곳이자 K원전의 세계적인 위상을 드높인 중심지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원전 부지와 전문 인력, 운영 경험 등을 모두 갖춘 장점을 발판으로 미래 첨단 에너지산업의 메카로 재도약한다는 계획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내 의견은 갈린다. 군내 5개 읍·면 주민들 사이에선 SMR 유치 희망과 반대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탈핵부산시민연대를 비롯한 부산지역 5개 시민단체는 지난 23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장군의 여론 수렴 절차와 군의회 동의안 제출을 문제 삼으며 유치 철회를 촉구했다.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계통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백업 설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의 배터리·양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탄소를 배출하는 가스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SMR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