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포장용 비닐을 사러 갔는데 며칠 전 8000원 하던 게 만원이 돼 있었다.” 케이터링 업체를 운영하는 정모(50)씨는 30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에서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하며 “불경기라 10% 할인해 판매하는 중인데, 그릇 값까지 오르니 미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정씨는 비닐과 일회용 그릇을 사러 시장을 찾았다고 했다. 방산시장은 국내 최대 규모 포장 자재·용기 도매시장이다.
이곳에서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은 조만간 많게는 30% 이상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방산시장에서 영업 중인 60대 A씨는 “공장에서 4월1일부터 가격을 올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5%에서 30%까지 올릴 것이라고 한다”며 “그때부터 물량을 확보하는 일이 진짜 전쟁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미국·이란전쟁 여파로 비닐·플라스틱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활필수품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종량제봉투 대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상공인·농민들에게서도 ‘비닐 대란’, ‘플라스틱 대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영등포 전통시장에서 마늘가게를 운영하는 고경숙(65)씨는 “35년 동안 장사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며 “꾸준히 거래해 오던 비닐봉투 업체에서도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500장에 5만원이었던 게 2주 만에 7만5000원까지 올랐다. 또 다른 상인 50대 남성 구모씨는 “지난주 공급업체로부터 연락받았다”며 “기존 대비 30% 정도 가격이 올랐는데, 다른 곳에서도 사재기하는지 물량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우려했다.
비닐·플라스틱제품 가격이 오른 것은 원료인 나프타 수입이 불안해진 여파다. 플라스틱·고무 등 석유화학제품 필수원료인 나프타는 국내 수요의 45%가 수입품이고, 이 중 중동산 비중이 77%에 달한다. 최근 미국·이란전쟁 여파로 호르무즈해협 통과가 어려워졌고, 원료 확보가 힘든 석유화학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포장용기 도매업체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문의를 받고 있다. 도매업체 사장 김모(50)씨는 “발 빠른 사람들이 열흘 전부터 전부 사 갔다. 물량이 없어 못 파는 분위기”라며 “가격을 올리기도 전에 나갔고, 4월 중순에나 물건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걱정된다”고 했다.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둔 농촌에서도 비닐 수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촌에선 토지를 덮는 토양 피복 비닐, 하우스 비닐, 사료를 보관하는 곤포(·包) 사일리지, 반사필름 등에 막대한 비닐을 사용한다. 그러나 최근 비닐 대란이 일면서 일부 지역에선 한 롤당 가격이 50%가량 치솟았다. 경북의 한 농협 관계자는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공공 유통망을 통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