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항에 들어온 선박에서 연료가 내려진다. 석유가 아니다. 그린 암모니아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작지만, 산업의 방향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31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그룹 및 주요 계열사들이 바꾸고 있는 건 사업이 아니라 성장의 방식 자체다. 외형을 키우는 대신 기술·인프라·구조를 동시에 손보는 ‘질적 성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분명하다. 매출 확대보다 수익 구조의 재설계다. 롯데는 화학·AI·물류·바이오 전 영역에서 생산 인프라와 기술 신뢰도, 운영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했다. 신사업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닌 기존 사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다.
특히 화학 부문에서는 상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롯데정밀화학은 세계 최초로 국가 간 그린 암모니아 상업 도입에 성공했다. 울산항을 통해 들여온 물량은 아시아 최대 규모 암모니아 터미널에 저장됐다.
이 자원은 향후 선박 연료, 발전 연료, 수소 운반체로 활용된다. 핵심은 단순 도입이 아니다. 그동안 계획 단계에 머물던 무탄소 에너지 밸류체인이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부문에서는 ‘현장 적용’이 시작됐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생성형 AI와 로봇을 결합한 ‘피지컬 AI’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 잠실 본사 1층 ‘AX Lab 3.0’ 매장에서는 로봇과 AI가 실제 매장 운영을 수행한다. 이 공간은 전시장이 아니라 유통 자동화 기술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다.
동시에 AI 플랫폼 ‘아이멤버’는 ISO/IEC 25058 인증을 획득하며 보안·안정성·위험 관리 측면에서 글로벌 수준의 신뢰도를 확보했다.
물류는 이미 해외에서 확장 단계에 들어섰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미국 텍사스 덴턴에 자동화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했다. 입고부터 출고까지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파트너는 글로벌 플랫폼 아이허브다.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는 분명하다. 단순 진출이 아니라 국내에서 축적한 자동화 물류 모델을 해외에 그대로 이식했다는 점이다. 롯데는 이를 기반으로 미주 시장에서 자사 물류 시스템을 표준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단계도 이미 진행 중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산학 협력을 통해 이족 보행 AI 휴머노이드 로봇의 물류 현장 실증에 나섰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사람이 수행하던 작업을 그대로 대체하는 단계다.
향후 물류센터에 실제 투입해 출고와 포장 작업을 수행하도록 학습시키고 운영 데이터를 축적할 예정이다.
바이오 사업에서는 ‘속도’가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세포주 개발부터 원료의약품 생산까지 약 8.5개월 내 가능한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 핵심은 생산 속도다. 미국 시러큐스 캠퍼스와 올해 8월 준공 예정인 송도 공장이 결합되면서 생산 역량도 확대된다.
동시에 구조조정도 병행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석유화학단지 재편을 통해 NCC 설비 일부 가동을 중단하고 HD현대케미칼과의 통합을 추진한다.
정부는 약 2조1000억원 규모 지원에 나섰다. 의미는 명확하다. 수익성이 낮은 구조는 정리하고 고부가 소재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배경은 분명하다. 고금리, 공급 과잉, 산업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에서 외형 확대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는 방향을 바꿨다. 덜 늘리고, 더 단단하게 만들고, 미래 사업을 동시에 심는 전략”이라며 “이 전략은 결국 소비자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