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편하게 선거운동 하셨겠어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경선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대구를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소속 한 국회의원과 선거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말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해 한결 수월하지 않았겠느냐는 뜻으로 말을 건넸더니 돌아온 것은 본선이 아니라 경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답이었다. 같은 당 소속에다 지역에서 내세우는 목소리도 비슷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일이야말로 진짜 힘든 승부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대구 정치의 오래된 문법이 선명해졌다. 이곳에서 선거의 무게중심은 오랫동안 본선보다 경선에 있었다. 본선은 경쟁의 무대라기보다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에 가까웠고 진짜 싸움은 대개 공천과 경선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대구를 둘러싼 지금의 분위기가 낯설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말은 너무 오래 반복돼 이제는 상투어가 됐다. 그만큼 대구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늦게 움직이는 도시이자 좀처럼 판이 흔들리지 않는 도시로 받아들여져 왔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에서 감지되는 작은 동요조차 뉴스가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근 대구·경북 정당 지지도가 오차범위 안 접전을 보이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 가상대결에서 국민의힘 후보군을 앞서는 조사까지 나오면서 이런 낯섦은 더 또렷해졌다.
2016년 4월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김 전 총리가 수성갑에서 당선됐을 때도 정치권은 크게 술렁였다.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지역구에서 승리한 것 자체가 상징적이었다. 당시에는 지역주의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뒤따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승리는 구조의 전환이라기보다 예외의 등장에 더 가까웠다. 김부겸이라는 인물의 경쟁력이 확인된 것이지 대구 정치 전체의 문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대구는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갔고 지난해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대구 지역구를 싹쓸이했다.
이 지점에서 호남과 대구는 닮은 듯 다르다. 호남 역시 오랫동안 민주당 계열 정당의 본거지로 불려왔지만 호남 정치는 분명히 선을 그어왔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배정당에도 경고장을 내밀고 심판했다. 2016년 총선에서 광주·전남·전북 28석 가운데 23석을 국민의당이 차지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심장으로 불리던 지역이 실망하면 표를 거둬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선거로 보여준 것이다.
대구·경북(TK)이 오랫동안 한쪽만 밀어준 정치의 문제는 단지 승패의 불균형에만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정치가 시민을 설득하기보다 귀속감과 관성에 기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배정당은 치열한 경쟁 없이도 승리를 기대할 수 있었고 반대 정당은 애초에 싸워볼 만한 전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정책보다 소속이 앞서고 성과보다 충성도가 힘을 얻게 됐다. 대구·경북의 일방적 쏠림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TK 보수정치의 무비판적 안전지대가 커질수록 중앙정치도 그만큼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총선의 한 지역구 승리가 특정 인물과 선거구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예외였다면 대구시장 선거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는 선거다. 여전히 특정 정당 내부의 경선으로만 돌아가는지 아니면 그 구도를 깨는 변화가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 전 총리의 대구시장 출마 선언도 이런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지금 대구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느냐보다, 누가 더 이상 이 지역을 마음 놓고 자기 몫처럼 여길 수 없게 되느냐에 있다. 대구·경북이 늘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다는 확신은 한국 정치 전체를 게으르게 만들었다. 한쪽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고, 다른 한쪽은 설명해 봐야 소용없다고 여겼다. 그 오래된 체념이 조금이라도 깨진다면 달라지는 것은 대구만이 아니다. 중앙정치가 오랫동안 기대온 계산법도 흔들리게 된다. 공짜 표가 사라지는 곳에서 정당은 더 치열해지고 유권자도 비로소 귀속이 아니라 판단의 자리에 서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