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의결했다. 중동전쟁발 고유가·고물가·고환율 등 3고 복합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번 추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신속한 집행이 필요하다. 정부는 고유가 대응, 민생안정, 산업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등 3대 분야에 집중했다고 했는데 방향은 맞다. 하지만 각론을 들여다보면 6·3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한 헤픈 씀씀이가 작지 않다.
추경안은 고유가부담 완화 차원에서 ‘소득하위 70%’ 3580만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씩 피해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4조8000억원이 소요된다. 하위 70%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중산층까지 포함된 보편지원에 가깝다. 중산층은 제외하거나 지원금을 줄이는 대신 고유가 충격에 생계가 막막한 빈곤층에 집중하는 게 옳다. 석유최고가격제 손실 보전용 5조원은 ‘밑 빠진 독 물 붓기’식 낭비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자고 나면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판에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어갈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제라도 공급 위축, 암시장 형성 등 부작용만 양산하는 인위적인 가격통제는 접어야 한다. 추경에는 청년창업과 영화·공연·숙박할인권 지원까지 포함됐는데, ‘전쟁 추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야당에서 ‘매표용 퍼주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올해 성장률이 0.2%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재원도 올해 반도체와 증시호황으로 늘어날 세수로 충당한다고 한다. 초과세수를 남는 돈처럼 여길 게 아니라 적자국채부터 갚는 게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다. 올해 예산은 본예산 728조원에 이번 추경을 합치면 753조1000억원인데 전년 대비 11.8%나 늘어난 수준이다. 잠재성장률 1%대인데 재정이 10% 넘게 확대되는 건 정상이 아니다. 과도한 재정투입은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와 환율을 자극할 공산이 크다. 국회는 심의과정에서 옥석을 가려 선심성 사업을 확 걷어내고 추경 규모도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할 경우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헌법상 긴급명령권은 내우·외환 등 국가비상상황에서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만 발동할 수 있다. 언제든 국회 소집이 가능한 데다 여당은 거의 모든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1993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선포 때 이후론 긴급명령권이 발동되지 않았을 정도로 예외적인 조치다. 신중히 행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