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때 경호처가 대만 당국 파일을 넘겨받았다. 한국에서 전개되는 중국 정보 활동을 대만이 추적한 자료다. 퍼스트레이디 내용도 포함돼 비상이 걸렸다. 확인 결과 “여사가 먹지 않는 햄버거 관련 사항이 있어 사실무근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김건희씨가 명태균씨에게 500만원 줬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나한테는 햄버거 하나 달랑 사주더니만”이라고 비꼰 적이 있다. 김씨와 햄버거의 연관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파일이 사실이라면 양안(兩岸)의 치열한 첩보전을, 거짓이라면 국공(國共) 내전 이래 양측 특무기관 특유의 마타도어전을 보여준다. 진위가 어떻든 양안의 소리 없는 전쟁이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CHINA(TAIWAN)’ 논란을 단순 표기 문제로 치부하면 대단한 착각인 이유다. 한반도 미래와 직결된 양안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대만의 시비는 생트집이다. 대만 국호는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다. 영문으로만 선택할 수 있는 전자입국신고에서 국적 의미의 ‘기본정보’엔 ‘TAIWAN’이 있다. ‘입국 정보(직전 출발지)’와 ‘출국 정보(다음 출발지)’엔 차이나 표기가 4개 등장한다. CHINA P.R, CHINA P.R(Hong Kong), CHINA P.R(MACAO), CHINA(TAIWAN)이다. 대만은 다른 3개와 달리 CHINA P.R(중화인민공화국)이 안 붙는다. 한국, 북한도 영어로 ‘코리아’라면 남인지 북인지 알 수 없다. 차이나도 중립적이다. 우리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한 마당에 되레 대만을 배려한 측면이 있다.
대만이 국호에서 먼저 차이나를 빼야 설득력 있으나 내부 반발, 중국 압박에 언감생심이다. 다수 기관·기업명에도 영어로 차이나가 들어간다. ‘China Airlines(중화항공)’가 대표적이다. 중국석유화학처럼 아예 한자로도 ‘중국’을 쓰는 기업도 상당수다. ‘중화’로 확대하면 부지기수다. 그뿐만 아니라 대만 당국과 매체는 사이트엔 없는 중문 표기인 ‘中國(臺灣)’으로 멋대로 한역(漢譯)해 반한 감정을 자극했다. ‘KOREA(SEOUL)’를 ‘남조선(한성)’으로 번역하는 식으로 있지도 않은 갈등을 만든 것이다.
한국은 민진당 정권의 탈중(脫中)·독립 드라이브의 제물이 됐다. 외국인등록증은 2004년, 전자입국신고서도 지난해 2월 시작된 CHINA(TAIWAN) 표기 문제를 지난 연말 대만이 뒤늦게 공식 제기한 것엔 복합적 배경이 있다. 소위 ‘정명(正名)대전’의 한반도 확전, 왜곡된 대한관(對韓觀),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가 결합한 결과다. 정명은 범민진당 진영이 대만의 모든 명칭에서 중국, 중화를 없애고 대만으로 바꾸겠다는 사회운동이다. 제1야당 중국국민당은 중화민국 법통수호와 독립반대 노선을 견지해 반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대만 대표단 홀대론이 불거졌다. 외교력 부족에 내부에서 궁지에 몰리자 진영 내 지지를 받는 이슈로 반한·반중 정서를 결집했다.
여기에 민진당은 ‘더불어민주당=친중, 국민의힘=반중’ 프레임을 씌워 왔다. 12·3 계엄 때도 민진당 원내 교섭단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계엄 옹호 글을 올렸다가 문제가 되자 삭제했을 정도다. 이번에 한국의 ‘친중 정권’과 대결한다는 이미지 부각을 노린 측면이 있다. 더욱이 미·중 대립 상황에서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은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11월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일본 존립 위기’라는 중대 발언을 했다. 대만의 지정학·지경학적 중요성이 높아져 대외적 공간이 확대되자 미·중 대립의 약한 고리인 한국 공박에 나선 것이다.
이 점에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을 영웅으로 만들 이재명정부의 원칙 없는 대응이 유감스럽다. 전자입국신고의 직전출발지·다음목적지를 아예 없애는 방식으로 대만 항의를 수용한다니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것이다. 무엇보다 양안전쟁, 남록(藍綠:국민당과 민진당)전쟁에서 한국 활용 시도가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