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는 19세기 초에서 중엽에 걸쳐 전 유럽을 풍미했다. 많은 화가가 프랑스 대혁명 후의 급변하는 현실과 시대 변화를 극적이며 역동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럴 때 자연으로 눈을 돌린 화가들도 있었는데, 파리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바르비종 마을에서 풍경화를 그렸던 바르비종파 화가들이다. 이들 중에는 인상주의 운동으로 향한 드가와 마네가 있었고, 사실주의 양식을 개척한 장 프랑수아 밀레가 있었다.
밀레는 이곳 화가들이 순수한 풍경화를 그릴 때 농부들의 생활을 담은 풍속화 방식의 풍경화를 그렸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밀레가 자신이 살아가면서 느끼고 겪었던 생각이 담긴 풍경화이다. 사회적 현실이 반영된 풍경화로 불리는 사실주의 그림이다.
바르비종에서 밀레가 그린 ‘이삭줍기’와 ‘만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연 속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소탈하고 은은한 자연풍경으로는 뿌린 만큼 거둔다는 농촌 생활의 정직함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그림은 밀레가 죽기 직전에 완성한 풍경화이다. 화면 가운데를 가로지른 흙길 한쪽으로 꽃이 만발한 사과나무와 채소밭이 있고, 다른 쪽에는 들풀들이 어둡고 칙칙한 황무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한차례 소나기가 휩쓸고 간 후의 풍경인지라, 화면 오른쪽의 밝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며 먹구름을 밀어내고 반대편 쌍무지개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여기에 화답한다. 쌍무지개와 밝은 햇살은 대지 위의 희망을 암시한다. 길이 끝나는 곳 나무 아래에서 소나기를 피하던 농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봄은 밝고 화사한 모습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겨울 끝자락의 스산함과 얼어붙은 대지의 심술도 남아 있다. 이 그림이 딱 그렇다. 밀레가 봄이 왔건만 겨울의 어둠을 모두 떨쳐 버리지 못한 봄 풍경을 담았다. 사회적 문제의식과 함께한 밀레가 이 풍경화에도 농부들의 고단한 삶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품었다. 그래서 밀레의 풍경화는 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