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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움직이는’ 부로바 음차시계… 혁신기술은 왜 몰락했나 [김범수의 소비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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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진동으로 움직이는 시계’

 

얼마 전 유인우주선으로 달을 탐사하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류가 달에 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바로 1960년대 시작된 ‘아폴로 프로젝트’가 있죠.

 

뜬금없이 아폴로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는지 아리송 할 겁니다. 바로 1960년대에는 인류가 이례적으로 기술이 발전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소리 진동(음차)로 시계를 움직이는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음차 시계라고 하면 지금은 낯선 개념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불렸던 음차 시계는 왜 지금 찾아보기 힘든 기술이 됐을까요. 음차 시계의 혁신성과 몰락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67~1975년에 생산된 부로바(Bulova) 아큐트론(Accutron) 시계들
1967~1975년에 생산된 부로바(Bulova) 아큐트론(Accutron) 시계들

◆‘혁신’의 음차 시계…부로바 아큐트론

 

소리 진동으로 움직이는 음차 시계는 1875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부로바(Bulova)가 아큐트론(Accutron)이라는 모델을 1960년에 출시하면서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던 1960년에도 음차 시계는 가히 혁신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음차 시계는 기존의 시계 시장을 주름잡고, 오늘날 고급화에 성공한 기계식 시계보단 대중화에 성공한 쿼츠(Quartz) 시계에 더 가깝습니다. 쿼츠 시계처럼 작은 배터리가 들어가는 구조죠.

 

하지만 부로바의 음차 시계가 쿼츠 시계와 다른 점은 바로 작동 방식입니다. 부로바 아큐트론은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류로 포크 처럼 생긴 소리 굽쇠를 진동을 시킵니다. 이 진동으로 시계의 움직임을 컨트롤 하는 구조입니다. 

 

아큐트론의 무브먼트(Movement) 모습과 진동부인 튜닝 포크(Tuning Fork).
아큐트론의 무브먼트(Movement) 모습과 진동부인 튜닝 포크(Tuning Fork).

이 때문에 부로바 아큐트론을 귀에 갖다 대면 ‘삐-’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소리 굽쇠가 진동하면서 발생하는 ‘허밍’ 현상이죠.

 

기계식 시계가 태엽과 탈진기(Escapement Wheel)라는 기어로 진동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아큐트론의 음차 시계는 드라마틱하게 정확도가 상승했습니다. 당시 기계식 시계가 한 시간에 1만8000번 진동했습니다. 즉 분당 300Hz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아큐트론 음차 시계는 무려 1분에 2만2600Hz의 움직임 입니다. 산술적으로 기계식 시계보다 무려 75배 더 정확한 것이죠. 오늘날 고급식 기계식 시계도 분당 480Hz 수준의 진동인 것을 감안하면 1960년에 나온 음차 시계는 혁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부로바 아큐트론 시계는 당대 혁신이자 시대를 앞서나가는 ‘얼리어답터’의 상징이 됐습니다. 마치 2010년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던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1960~1970년대 살아온 할어버지 세대들에게 부로바 시계는 오메가(Omega), 론진(Longines)와 더불어 예물시계 삼대장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부로바가 자신의 기술력을 강조하는 광고와 시계 기업 중 최초로 시행한 TV 광고 모습
부로바가 자신의 기술력을 강조하는 광고와 시계 기업 중 최초로 시행한 TV 광고 모습

오늘날 오메가가 고급화에 성공하고, 론진도 어느정도 고급 시계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고급화에 실패한 부로바를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당시 부로바의 위상은 혁신의 상징으로 대단했습니다. 부로바는 1941년 7월 1일 시계 기업 중 세계 최초로 TV 광고를 했고, 미국 지도에 시계를 덧그린 그림과 함께 “미국은 부로바 시계로 돌아간다(America runs on Bulova time)”는 멘트를 송출했죠.

 

또한 부로바 시계는 기술력과 내구성에서 신뢰를 받아 최초는 아니지만 1971년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다녀온 시계이기도 합니다. 시계를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오메가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가 최초로 달에 다녀온 시계라는 사실을 알지만, 부로바 시계가 다녀왔다는 점은 잘 모르는 듯 합니다.

 

세이코의 최초 쿼츠 시계 '아스트론(Astron)과 '지구 종말급' 쿼츠 시계 구조
세이코의 최초 쿼츠 시계 '아스트론(Astron)과 '지구 종말급' 쿼츠 시계 구조

◆혁신의 부로바는 왜 몰락했나… 재앙의 ‘쿼츠 파동’

 

 

하지만 아큐트론 음차 시계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의 상징 부로바의 전성기는 짧았습니다. 바로 앞서 말한 쿼츠 시계의 등장 때문이죠.

 

쿼츠 시계는 음차 시계와 같이 작은 배터리로 동력을 생성합니다. 차이점은 튜닝 포크가 아닌 일정한 방향으로 커팅된 석영(Quartz)에 전류를 보내 진동 시키는 방식이죠. 쉽게 말해 튜닝 포크냐, 석영이냐의 차이입니다.

 

쿼츠 시계는 1927년 처음 기술이 개발됐고, 오늘날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불리는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이 1948년 처음 쿼츠 시계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파텍 필립 어른의 사정(?)으로 쿼츠 시계 개발을 금방 중단했죠. 

 

하지만 1969년 일본의 세이코(Seiko)에서 아스트론(Astron)이라는 모델에 쿼츠 무브먼트를 넣으면서 시계 업계는 마치 백악기 말 공룡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린 ‘K-Pg 멸종’을 맞이 했습니다. 바로 ‘쿼츠 파동’ 입니다.

 

1970~1980년대 당시 모든 시계 브랜드가 공룡처럼 울면서 쓰러졌다. AI 생성 사진
1970~1980년대 당시 모든 시계 브랜드가 공룡처럼 울면서 쓰러졌다. AI 생성 사진

앞서 말했듯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합니다. 오늘날 제품 단가가 3000원이 되지 않는 쿼츠 무브먼트의 1분 당 진동은 196만6080Hz 입니다. 즉, 기계식 시계보다 약 6500배 정확하며, 아큐트론의 음차 시계보다 약 90배 정확합니다.

 

게다가 쿼츠 시계가 무서운 점은 부품 수가 몇개 되지 않고, 간단하며, 수급 단가더 낮은데다가, 가공도 쉽죠. 쉽게 말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기계식 시계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 많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하루 아침에 멸망했고, 그나마 살아남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는 인수 합병 정책으로 연합해 명맥만 유지할 수 있었죠. 기계식 시계가 고급화로 성공한 것은 세이코 아스트론이 처음 나온 1969년보다 약 20여년 뒤 입니다.

 

만약 전기차 시대가 보편화 되면서 자동차 가격이 대당 1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또 전기차 수리비가 10만원도 되지 않는다면, 속도와 안정성도 스포츠카와 고급 세단보다 뛰어나다면, 과연 내연기관 자동차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바로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는 이와 같습니다.

 

문제는 세이코가 일으킨 쿼츠 파동이라는 공룡 멸망급의 재앙은 기계식 시계만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음차 시계도 영문도 모르고 운석에 피폭돼 죽어간 공룡 마냥 몰락했습니다.

 

사람들은 쿼츠 시계보다 가격은 비싼데 정확도는 떨어지는 비슷한 시계인 음차 시계를 살 이유가 없어진 것 입니다. 그나마 기계식 시계는 배터리가 아닌 태엽으로 구동하기 때문에 차별점이라도 있었죠.

 

그렇게 음차 시계로 대표되는 부로바 아큐트론은 1970년 후반 단종됩니다. 이후 부로바는 쿼츠 무브먼트를 적극 받아들여 쿼츠 시계에 주력했지만, 이미 시장은 달라졌습니다. 

 

소비자들은 굳이 부로바 시계를 찾지 않아도 더 저렴한 쿼츠 시계를 구할 수 있었고, 사치품으로 시계를 사자니 부로바가 아닌 롤렉스(Rolex) 같은 제품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 빈티지 시장에서 부로바 아큐트론의 인기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음차 시계라는 독특한 기술과 다시는 생산될 일이 없다는 희소성 때문이죠. 조용한 곳에서 들려오는 ‘삐-’ 허밍음도 매력적이죠.

 

다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생산된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장이 났을 경우 부품이나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부로바의 음차시계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아무리 혁신 기술이더라도 더 나은 혁신 기술이 개발되면 멸종하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사실이죠. 또한 기술의 잠재력도 중요합니다. 음차 시계보다 쿼츠 시계의 활용도가 더 큰 것도 무시 못할 부분 입니다.

 

이 제품 알면 최소 30대 후반. 소니에서 출시한 MD 플레이어(좌측)와 MP3 천하를 이룩한 애플의 아이팟 미니
이 제품 알면 최소 30대 후반. 소니에서 출시한 MD 플레이어(좌측)와 MP3 천하를 이룩한 애플의 아이팟 미니

대표적으로 2000년대 MP3 플레이어와 MD 플레이어도 비슷한 맥락 입니다. 일본은 1992년 미니디스크 플레이어(MD 플레이어)를 개발했습니다. 기존에 쓰였던 카세트테이프 방식의 플레이어에 비해 음질이 너무나 선명했고, CD 플레이어에 비해 휴대성이나 안정성이 뛰어났죠.

 

하지만 MD 플레이어의 결말은 모두가 알다시피 MP3가 상용화 되면서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혹자는 MD 플레이어의 음질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음질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저장용량, 발전속도, 활용성 측면에서 MP3 플레이어를 따라올 수가 없었죠.

 

어쩌면 오늘날 혁신 기술이라는 것도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력’, ‘생산 단가’, ‘활용성’ 이 세 가지가 있으면 멸망당하는 공룡이 아닌, 공룡을 불태운 운석이 될 수 있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