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는 어두운 밤에도 선박들이 바다 위에서 항로를 확인하고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해안이나 섬에 설치한 구조물이다. 한때 한국에서 널리 애창된 동요 ‘등대지기’는 바로 이 등대 근무자들의 노고를 기리는 내용이다.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이 노래의 멜로디는 미국의 옛 찬송가에서 유래했고, 가사는 1940년대 말 일본인이 붙인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과거처럼 자주 불리지는 않는 듯하다.
등대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광과 달리 우리나라 등대의 기원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구한말 조선 침략의 결심을 굳힌 제국주의 일본은 서해안을 중심으로 등대 건설을 서둘렀다. 한반도를 두고 경쟁하던 러시아와의 충돌을 염두에 둔 일종의 군사 인프라 구축이었다. 1904년 발발한 러·일 전쟁은 이듬해인 1905년 일본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일본의 강압 아래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로써 조선을 사실상 보호국으로 삼은 일본은 3면이 바다인 한국의 해안과 섬 곳곳에 1912년까지 200개 넘는 등대를 세웠다.
1903년 일본인들에 의해 건립된 인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등대에 해당한다. 2003년 바로 옆에 지어진 새 등대에 임무를 넘기고 퇴역했다. 6·25 전쟁 도중인 1950년 9월 미군 등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에 맡겨졌던 중대한 역할은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에 잘 묘사돼 있다. 비록 일본이 자국의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한국 안보에도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문화유산인 사적 제557호로 지정됐다.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인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은 ‘등대 스탬프 투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전국의 아름다운 등대를 찾아 ‘등대 여권’에 스탬프를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일 기술원에 따르면 투어 누적 참가자가 최근 2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등대와 함께한 인증샷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유하려는 MZ 세대와 커플, 가족 단위 참여가 크게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스탬프로 여권을 꽉 채운 완주자만 7075명에 달한다. 그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등대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