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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좌익무장대에 희생된 1764명도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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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8주년 맞아 연구서 낸 박기남 前 제주도자치경찰단장
‘제주도인민유격대’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전체 희생자의 12.6%
친지 죽음 지켜본 부친 6·25 해병 4기 학도병 지원
“좌익 무장대에 희생된 1764명도 반드시 기억돼야 합니다.”

 

박기남(59) 전 제주도자치경찰단장이 제주 4·3 78주년을 맞아 ‘4·3사건과 제주도인민유격대, 1764’(오색필)라는 연구서를 펴냈다. 4·3이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 유린’이라고 일방적으로만 기억되는 것에 반박하기 위해 3년 동안 집필한 저서다.

 

박기남 전 제주도자치경찰단장.
박기남 전 제주도자치경찰단장.

박 전 단장은 5일 “1764는 좌익 무장대인 ‘제주도인민유격대’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숫자다. 4·3 전체 희생자의 12.6%”이라며 “당시 격렬했던 무력 충돌을 짐작하겠거니와 일반적으로 알려진 군경에 의한 ‘무참한 학살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라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저자는 4·3 사건의 정의에서부터 제기되는 문제점부터 당시 9연대장이었던 박진경 연대장의 ‘제주도민 30만명 희생설’에 이르기까지 남조선인민대표대회 연설문, 제주도민유격대투쟁보고서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서라고 소개했다.

 

저자는 “4·3 희생자 중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토벌대에 의한 희생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 속에서 나타난 인권유린의 행태나 피해자 당사자, 그리고 그 가족, 친지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또한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피해보상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는 4·3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장대에 의한 민간인 희생도 기억해야 한다며 “아울러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에 따른 희생이나 피해도 잊지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제주경찰서 수사과장과 제주 서부·동부경찰서장 등을 지낸 박 전 단장의 집안도 4·3사건 당시 좌익에 의해 큰 피해를 겪었다. 1949년 1월 18일 한밤중에 8촌 친척 집에 좌익 무장대가 들이닥쳐 그 어머니와 누나를 죽창으로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다친 채 겨우 살아났지만 고아가 된 그 친척을 박 전 단장의 조부가 데려다 키웠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친 박순도씨는 “나라가 망한 다음에 내가 살아서 무엇 하겠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애월중학교 4학년 당시 해병 4기 학도병에 지원했다. 고향인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에서만 24명이 해병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그들은 좌익 무장대가 저지른 만행을 잘 알고 있었다.

 

장전리 대청단 간부 습격, 죽성·고다시·인다라 마을 습격, 입산 거부자 살해, 명월리·금악리·도두리 습격, 영락리 경찰관 가족 살해, 서흥리 우익 진영 습격, 이도종 목사 생매장 살해, 동료 학생 살상…. 그가 이 책에서 기록한 제주도인민유격대의 만행 역시 끔찍했다.

 

박 전 단장은 이번 책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두 가지 1차 사료를 싣고 직접 번역한 영문도 넣었다. 우선 무장 봉기의 주역인 김달삼이 1948년 8월 월북해 해주의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서 읽었던 연설문이다. 총선거를 방해하는 것이 4·3 봉기의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또 하나는 좌익 무장대가 자신들의 활동을 기록한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다.

 

일각에서 당시 9연대장이었던 박진경 대령을 ‘양민을 희생시켰다’고 음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4·3 보고서는 박 대령의 참모인 임부택 대위가 ‘박 대령이 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했다’고 기록했으나, 당시 한성일보 보도를 보면 이것은 임 대위가 아니라 암살범들의 변호사인 김양의 주장이었다는 것이다. 김양은 6·25 때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사건이 ‘5·10 총선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무장봉기’였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저자는 “당시 제주도민은 결코 자발적으로 5·10 총선을 보이콧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이 아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4·3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1764명과 그 유가족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그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4·3의 성격 규정으로 인권과 평화,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설파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