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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의 어느 봄날, GS칼텍스와 실바는 ‘장충의 전설’이 됐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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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남정훈 기자] GS칼텍스는 2024~2025시즌 전반기를 1승17패, 최하위로 마쳤다. 팀 공격의 핵심인 실바가 부상으로 4경기 빠지기도 했지만, 국내 선수들의 전력이 너무나 처진 게 이유였다. 다만 후반기를 11승7패로 마치며 탈꼴찌에 성공한 건 고무적인 요소였다.

 

2025~2026시즌을 앞두고도 전망은 그리 밝지 못했다. 지난 시즌 3강인 흥국생명-정관장-현대건설의 전력 하락 요소가 뚜렷한 데다 7개 구단 최강인 실바의 압도적인 공격력 덕분에 잘 해야 봄 배구 진출 정도로 평가받았다.

 

뚜껑을 열자 경기력 기복이 심했다. 아시아쿼터 레이나(일본)가 첫 4경기만 뛰고 무릎 부상으로 한 달 이상 이탈하면서 실바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실바의 컨디션에 따라 웃고 우는 경기가 반복됐고, 전반기를 11승13패 5위로 마쳤다. 봄 배구 진출 가능성도 멀어보였다. 후반기 들어 반전이 찾아왔다. 실바는 매 경기 팀 공격을 ‘하드캐리’했고, 유서연-권민-레이나로 이어지는 아웃사이드 히터진도 실바의 뒤를 튼실하게 받쳤다. 덕분에 시즌 최종전인 지난달 18일 현대건설을 꺾고 가까스로 봄 배구 진출 막차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20~2021시즌 이후 5시즌 만에 ‘장충의 봄’이 도래한 것이다.

 

매 경기, 매 세트가 살얼음판인 봄 배구에서는 팀 공격의 절반 가량을 책임지면서도 높은 생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인 최강 무기 실바를 보유한 GS칼텍스는 무적이었다. 흥국생명과의 단판 준플레이오프,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를 3전 전승으로 뚫어낸 GS칼텍스는 정규리그 1위 도로공사와의 챔피언결정전마저 단 3경기 만에 끝내버렸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4월의 봄날, 2025~2026시즌의 GS칼텍스는 ‘전설’이 됐다. 여자부 사상 최초로 준플레오프를 거친 팀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GS칼텍스는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혼자 36점(공격 성공률 47.89%)을 몰아친 실바를 앞세워 세트 스코어 3-1(25-15 19-25 25-20 25-20)으로 이겼다. 김천 원정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잡고 올라온 GS칼텍스는 내친 김에 3차전까지 잡으며 이번 봄 배구를 6전 전승으로 끝냈다.

 

이번 봄 배구는 그야말로 ‘실바의, 실바에 의한, 실바를 위한’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국생명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42점을 몰아치며 전설의 시작을 알린 실바는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40점, 32점을 몰아치며 객관적 전력 열세를 극복해냈다.

 

도로공사와의 챔프전에서도 실바의 압도적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플레이오프를 2경기 만에 뚫어낸 덕분에 사흘 간의 휴식을 벌었다 해도 앞선 3경기에서 팀 공격의 절반 가량을 책임져온 실바가 제 컨디션일리 만무했다. 게다가 상대는 지난달 13일 일찌감치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 도로공사였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GS칼텍스가 열세였고, 체력에서도 절대 열세였다.

 

그러나 GS칼텍스가 갖가지 불리함을 뚫어낼 수 있었던 건, 실바라는 확실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아래 단계부터 뚫어오면서 선수단 내에서 점점 커진 기세였다. 흥국생명과 준플레이오프만 해도 ‘실바 원맨팀’으로 보였던 GS칼텍스였지만, 봄 배구를 거듭하면서 권민지, 최가은, 유서연, 레이나 등이 돌아가며 ‘씬 스틸러’ 역할을 해내며 실바의 무거운 어깨의 짐을 덜어주는 모습이었다.

 

실바는 성치 않은 어깨와 무릎 상태 속에서도 동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날 실바는 3세트 도중 공격을 시도하다 점프를 제대로 뜨지 못하고 공을 네트에 쳐버리는 범실을 저질렀다.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었지만, 이후에도 실바는 멈추지 않았다. 챔프전 3경기에서 104점을 올리며 GS칼텍스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 역할을 한 실바는 기자단 투표 34표 중 33표(기권 1표)를 쓸어담으며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정규리그에서 1083점을 올리며 남녀부 통틀어 사상 첫 3년 연속 1000점 돌파 및 2011~2012시즌의 몬타뇨(당시 KGC인삼공사)의 1076점을 넘어서며 여자부 역대 한 시즌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운 실바는 13일 열리는 V리그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MVP 수상도 유력하다.

 

반면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했음에도 챔프전을 앞두고 10년 간 팀을 이끌어온 김종민 감독을 내치면서 스스로 우승 트로피를 집어던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김 감독이 지난해 불거진 A코치와의 폭행 사건으로 지난 2월 검찰로부터 약식 기소됐고, 도로공사는 3월31일자였던 김 감독의 계약날짜 만료를 이유로 챔프전 지휘봉을 뺏었다. 김 감독이 재계약은 원하지 않으니 부속 합의를 통해 챔프전만 이끌게 해달라 요청했지만, 도로공사는 이마저도 들어주지 않았다. 10년 간 팀을 이끌어온 감독의 빈 자리는 경험이라는 요소가 크게 좌우하는 챔프전에서 더욱 컸다. 1차전을 패한 뒤 수석코치였던 김영래 감독대행에게 내년 시즌을 이끌 수 있도록 조치해 리더십의 공백을 메워보려 했지만, 이미 어수선해진 선수단 분위기를 다 잡기엔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