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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지키려던 엄마… 사위 폭행에도 병원 한 번 못 갔다

대구 ‘캐리어 시신’ 사건 전말

신혼집 원룸에서 함께 생활
사위, 범행 후 아내 감시·협박
보복 두려워 경찰 신고 못 해

대구에서 발생한 ‘여행용 가방(캐리어) 시신’ 사건은 50대 여성이 20대 사위의 무차별적인 가정폭력으로부터 딸을 보호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숨진 모친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딸도 남편의 보복을 두려워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이라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피해자들이 마주한 비극적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18일 20대 딸 부부가 50대 어머니의 시신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중구 주거지에서 신천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대구=연합뉴스
지난달 18일 20대 딸 부부가 50대 어머니의 시신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중구 주거지에서 신천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대구=연합뉴스

5일 대구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존속살해 및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사위 조모(27)씨는 올해 2월 초 경북 경산시에서 대구 중구로 이사 온 당일 처음 장모 A(54)씨를 때렸다. 그는 “이삿짐 정리를 빨리 안 한다”, “집에서 시끄럽게 군다”, “물건을 정리하지 않는다”는 등 온갖 꼬투리를 잡았다. 이후 여러 차례 폭행에도 딸 최모(26)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A씨에게 집을 떠나라고만 했다. 경찰은 “딸이 남편을 말리다가 본인도 함께 맞거나, 벗어나지 못하도록 협박받은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딸 최씨가 혼인 신고를 한 직후부터 남편에게 폭행당하자 A씨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비좁은 원룸으로 옮겨 함께 생활하다 결국 지난달 18일 조씨의 장시간 폭행 끝에 사망했다. 숨진 피해자는 생전에 가정폭력 등 범죄 피해로 경찰에 신고한 이력은 없었다. 조씨는 사건 당일 가방에 장모 시신을 마구잡이로 구겨 넣고 아내와 도보로 10~20분 거리의 북구 칠성동 신천으로 이동해 내다 버렸다. 시신이 든 가방은 지난달 31일 신천 하류에서 발견됐다. 조씨는 범행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아내 최씨에게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겁박했다. 또 조씨는 가방이 발견되기까지 2주간 좁은 원룸을 비롯해 외출할 때도 내내 최씨 곁에 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최씨는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 범행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씨가 남편으로부터 장기간 가스라이팅을 당해 잦은 폭행이나 모친이 숨졌는데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경찰은 조씨에게 존속살해?시체유기 혐의를, 최씨는 시체유기 혐의만 적용해 모두 구속했다. 경찰은 조씨가 최씨에게 저지른 가정폭력을 수사한 뒤 혐의 추가 적용을 검토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르면 8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