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무력 충돌과 그로 인한 희생은 국가의 의미를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전쟁은 국가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희미하던 국가의 의미가 삶을 지켜야 할 현실로 다가오며,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각자가 품고 있는 국가관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의 한국은 오늘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난하고 척박한 시대였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국토 위에서 국가는 든든한 버팀목이라기보다, 어떻게든 함께 살아남아야 할 절박한 공동체였다. 그런 시대에 정치도 권력도 아닌, 자신의 몸을 던져 나라를 떠받치려 했던 이들이 있었다.
충북 충주 시내 한 모퉁이, 번화한 거리에서 구두를 닦던 교사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들을 생업에 나선 노동자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는 ‘가르치자, 빈농자제’라는 어깨 띠가 걸려 있었다. 그 중심에 박종구라는 청년이 있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성화학원의 교사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줄이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교실은 비좁고 책상과 의자도 변변치 않았다. 그럼에도 수업은 멈추지 않았다. 여름이면 거리로 나가 연필을 팔고, 엿을 팔았으며, 끝내 구두닦이 통을 들었다. 구두 한 켤레를 닦을 때마다 그들은 아이 한 명의 미래를 함께 닦아 나갔다. 겨울에는 타 도시로 나가 행상을 하며 교사(校舍) 건축 자금을 모았다. 농민들 또한 그 뜻에 감동하여 가진 것 없는 형편 속에서도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피와 땀으로 세워진 교실에서 아이들은 하루 열 시간씩 공부했다. 배움은 삶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교사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교재를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교육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땀은 땅을 위하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고, 피는 하늘을 위하자.”는 이들의 좌우명은 말로 끝나지 않고 삶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었다. 나중에 그의 자전적 에세이 ‘그늘에 솟는 태양’이 발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충청도의 들판에서는 또 다른 청년이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농민이여, 깨어나라.” 한인수라는 이름의 그는 농촌이 무너지면 국가도 흔들린다고 믿었다. 그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농민들을 깨웠고,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 잠든 이를 흔들어 깨우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외쳤다. 집회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을 붙잡고 농촌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 절박한 진심은 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경외심 섞인 충격을 줄 정도였다.
그의 삶은 온전히 농촌에 기울어 있었다. 집에는 쌀이 떨어진 지 오래됐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 농촌을 걱정했다. 아내에게 생활비 대신 은행잎을 건넸다는 일화는 그의 삶이 얼마나 궁핍했는지, 동시에 그 정신이 세속적 타산을 얼마나 초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열정은 흩어지지 않았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힘을 모아 대전 시내에 ‘농민의 집’을 세웠다. 이어 천안 병천리 산자락에 복지농도원을 세웠고, 이곳은 전국 농촌 교육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이곳을 거쳐 간 인원만도 2만 명이 넘는다. 쌀 한 되, 수저 한 벌의 정성이 모여 세워진 그 교육장에는 공동체의 정성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1966년 국가로부터 제1회 ‘5.16 민족상’ 사회부문 본상을 받았다.
이들의 삶을 움직인 배경에는, 당시 사회로부터 이단으로까지 인식되던 통일교 신앙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신앙은 교리의 언어로 드러나기보다, 삶의 실천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아이를 가르치고, 농촌을 일으키는 일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확신이었다. 두 사람의 삶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펼쳐졌지만, 그 밑바탕에는 하나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국가란 직접 손을 맞대고 살려내야 할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박종구에게 국가는 배움에서 소외된 아이들이었고, 한인수에게 국가는 무너져가는 농촌이었다. 그들은 국가를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몸으로 떠받쳤다.
오늘 우리는 국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국가는 점점 합리와 타산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드물어지고 있다. 그러나 구두를 닦던 교사와 농촌을 일으킨 청년의 삶은 신앙이 사회를 떠받치는 무언의 힘임을 보여준다. 국가는 결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과 땀, 보이지 않는 헌신 위에 세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