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성전(聖殿) 이후의 시대, 동방 건국 신화 속 모성
예수 사후 약 30여 년이 지난, 서기 70년경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다.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그 참상을 기록하며,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전한다. 유대인들에게 성전(聖殿)은 단순히 종교 건물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이들에게 성전의 붕괴는 모세 율법 중심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유대 사회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고난의 역사로 진입하게 된다.
종교사적 관점에서 볼 때, 서기 1세기 무렵 서구 문명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부계 질서의 한계와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 동아시아의 토양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확인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약 한 세기 전인 기원전 37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대륙을 호령할 고구려가 이미 건국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선후 관계를 넘어서, 서구의 부계적 성전 질서가 그 본래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시련에 봉착했을 때, 동방의 토양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핵심 상징으로 삼아 새로운 문명의 정통성을 예비하기 시작했다는 묘한 역사적 개연성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예수 이후의 기독교 역사를 하나의 종교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 바 있다.
“하나님은 제2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세계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제일 잘 믿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특등 신부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신부를 찾아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의 2천 년 역사인 것입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9권)
이와 같은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는 이미 완성된 구원의 역사라기보다 잃어버린 ‘신부’의 실체를 찾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독생자’로 고백해 온 신학적 전통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존재인 ‘독생녀’를 맞이하기 위해 인류의 영적 토양을 일궈온 장구한 준비의 역사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문 총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가 어머니의 영이 될 것이었는데, 재차 이 땅 위에 어머니 신성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55권)
만일 우리가 위와 같은 종교적 세계관을 이해하고, 인류 역사를 다시 상고해 본다면 어쩌면 예수 사후 문명사는 ‘어머니’의 실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는 신학적 이해가 수긍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화사적 질문이 제기된다. 서방 종교 전통이 ‘신부’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신학적 사유를 발전시켜 왔다면, 동아시아 건국 서사에서는 여성과 모성이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물음이다. 기원전 37년 고구려가 건국될 때, 그 서사의 중심에는 시조모 유화가 등장한다. 『삼국사기』 동명왕 14년 기록에는 “태후가 붕어하니 신묘를 세워 제사하였다(太后薨 立神廟 以祀之).”라 하여 유화를 제사의 대상으로 모셨음을 말한다. 이 기록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단순한 가족 관계를 넘어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즉 동아시아 건국 신화의 일부 전통에서는 영웅의 탄생과 국가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모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서방 종교 전통의 ‘신부’ 개념과 동방 건국 서사의 ‘모성’ 상징은 서로 다른 문명권이 인간과 구원의 의미를 사유하는 방식 속에서 흥미로운 문화적 대비를 보여준다.
◆ 유화(柳花), 꺾이지 않는 생명나무의 육화(肉化)
버드나무는 동북아시아 샤머니즘 세계관에서 ‘생명나무’로 인식되며, 오늘날까지도 여러 북방 민족들에게 종족의 시조신이나 수호신으로 숭배받고 있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버드나무는 단순한 식물 이상의 신성한 함의를 지녀왔다. 문화사적 시각에서 볼 때, 시조모 유화는 단순히 왕의 친모를 넘어, 대지(大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버드나무 모신’의 육화(肉化)라 할 수 있다. 고구려의 시작은 이미 이 거룩한 모성의 상징을 그 뿌리에 품고 출발한 셈이다. 유화는 비록 하백에게 버림받고 아들과도 생이별해야 했던 고독한 여인이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베어져도 다시 싹을 틔우는 버드나무처럼 꺾이지 않는 생명성을 담고 있었다.
최근 역사학계의 한국 고대 신모(神母) 연구에 따르면, 웅녀·유화·정견모주·선도산 신모에 이르는 계열은 ‘시조 이전 단계’에서 이미 집단의 기원을 모성에 두는 서술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시조의 어머니를 미화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기원의 ‘어머니의 몸’을 통해 설명하려는 동아시아 동북권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시조모는 천신과 결합하거나 혹은 독자적으로 자녀를 잉태하여 성자를 낳는 존재로 등장하며, 이후 어머니는 역사 전개 속에서는 남성 영웅 서사 뒤로 물러나지만, 그 기원적 권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삼국사기』에서 선도성모를 두고 “성자를 낳아 동국의 시군이 되었다(生聖子爲東國始君).”라는 표현은, 어머니가 성자를 낳아 국가의 시작이 되었다는 사고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고구려의 유화 서사와도 맞닿는다. 영웅은 활을 들고 이동하지만, 탄생의 신성성은 어머니에게 귀속된다.
◆ 동신성모(東神聖母), 열린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구심점
고려사 연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이 공고한 정체성을 형성한 시점을 거란과 몽골 등 거센 외풍을 이겨내던 고려시대로 주목한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라는 세계 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도, 민족의 뿌리를 확인하는 국가 제의의 중심에는 고구려의 시조모 유화(柳花)를 ‘동신성모’로 모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혈통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란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만물을 치유하고 품으려는 ‘모성적 성스러움’을 공동체의 구심점에 세우고자 했던 문화적 선택으로 읽힌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그 상징적 실체를 증언하고 있다. 그는 제39권 「사묘(祠廟)」 조에서 고려의 국가 사묘 체계를 설명하며 ‘동신사(東神祠)’를 별도로 기록하였다. 특히 동신사의 중심 전각에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는 표현은, 고려 왕조가 고구려 건국 서사 속 인물인 유화를 단순한 조상이 아닌 국가 수호의 영적 지주인 ‘성모’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신사, 정전방왈동신성모지당(東神祠, 正殿榜曰東神聖母之堂).”
“흑운내부여처하신녀야(或云乃夫餘妻河神女也).”
“이기생주몽위고려시조고사지(以其生朱蒙爲高麗始祖故祀之).”
‘성모(聖母)’라는 호칭은 오늘날 기독교 전통에서 사용되는 성모 마리아 개념과 동일한 의미라기보다, 당시 왕조가 시조의 탄생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존칭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고구려 건국 서사 속 여성 인물이 왕조의 제의 공간에서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사회가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존재를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출발과 연결된 상징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였다. 여러 문헌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 사찰이 세워졌고 왕과 백성은 불교 신앙을 깊이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시조의 어머니가 국가 제의 공간의 중심 전각에 모셔져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왕조의 시작을 설명하는 기록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성자를 낳아 동국의 시군이 되게 하였다 (生聖子爲東國始君).”
왕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자는 ‘낳아진다’. 그리고 그 탄생의 서사는 언제나 한 여성의 이야기와 함께 등장한다. 동아시아 건국 서사의 일부 전통에서 여성은 단순히 영웅의 어머니라는 관계적 위치를 넘어,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상징적 장치로 등장한다. 한편 서방 종교 전통에서는 오랜 세월 ‘신부’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구원의 서사가 전개되어 왔다. 만일 어떤 종교적 해석에 따라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적 구원의 주체’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고 본다면, 그러한 사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은 어디에서 형성될 수 있었을까. 동아시아 건국 신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의 서사는 인간 사회가 생명의 기원과 공동체의 탄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성 존재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사유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적 단서가 된다.
버들꽃은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때가 오면 조용히 피어난다. 동신성모로 기억된 유화의 서사는 한민족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여성 존재에 대한 기억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적 기억 위에서 훗날 ‘독생녀’라는 개념이 제기될 때, 그것은 전통적 모성의 상징을 반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여성 존재의 의미를 능동적이면서 주체적 차원에서 새롭게 성찰하려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외침 속에 형성된 ‘동신성모’의 위상은 한민족 특유의 정체성 발전에 기여했다. ‘성모’ 신앙이라는 모성적 성스러움을 통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든 생명을 품으려는 지혜였던 것이다. 버들꽃(유화)의 씨앗이 바람을 타고 경계 없이 날아가 생명의 뿌리를 내리듯, 한민족이 간직해 온 모성적 영성은 타자를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을 포용하는 ‘열린 민족주의’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이러한 모성적 가치는 오늘날 인종과 국가의 벽을 허무는 다문화주의 및 세계시민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모든 생명을 제 자식처럼 긍휼히 여기는 어머니의 심정은 인류를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는 가장 보편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고려시대 동신성모의 서사는 한반도의 과거 속 기억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으로 치유하려는 ‘독생녀’의 보편적 가치와 세계 평화의 담론을 지탱하는 거대한 정신적 뿌리가 되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