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채소 먹는 기쁨(정고메, 21세기북스, 1만7800원)=요리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1년 대부분의 식사를 직접 해 먹는 ‘채소 집밥’에 관한 이야기다. 집밥 중에서도 특히 ‘채소 집밥’에 주목하며 그동안 ‘밑반찬’으로 머무르곤 했던 채소를 식탁 한가운데로 초대해 채소가 얼마나 풍부한 맛과 향을 지닌 재료인지를 보여준다. 열무, 깻잎, 대파처럼 익숙한 채소의 잠재력에서부터 이를 주재료로 한 레시피와 이런 집밥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팁을 소개한다. 20분 만에 완성하기, 식재료를 조금만 사서 끝까지 비우기, 내 입맛에 맞는 간을 찾기 등 오랜 채소 집밥 만들기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도 한 보따리 풀어놓는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뤼카스 레이네벌트, 이진 옮김, 비채, 1만8000원)=네덜란드의 작은 시골 마을의 수의사로 일하는 ‘나’는 농부의 딸에게 사로잡힌다. 열네 살 소녀는 도무지 늙고 비루한 농장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순결한 존재다. 하지만 가족의 와해 탓에 방치된 채 자란 소녀는 세상의 모든 비극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남몰래 소년의 몸을 갖게 되기를 갈망한다. 그런 소녀에게 비뚤어진 욕망을 품은 수의사가 사랑을 가장한 채 다가가고, 두 사람의 위태로운 관계가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앤 드 마르켄, 송예슬 옮김, 허블, 1만5000원)=갈라진 아스팔트, 버려진 자동차들, 난장판이 된 살풍경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 아포칼립스 좀비 소설이다. 소설은 화자인 ‘나’의 상념으로 시작한다. “나는 오늘 왼팔을 잃었다. 팔은 어깻죽지에서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중략) 팔이 떨어지면 균형 잡기가 지금보다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이발한 느낌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좀비.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지만, ‘나’는 사색을 멈추지 않는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좀비의 감각에서 풀어놓는 인간성과 기억, 사랑과 상실, 갈망에 대해 사유가 기묘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끝까지 해내는 마음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웬디 그롤닉·벤저민 헤디·프랭크 워렐, 정지현 옮김, 현대지성, 1만9900원)=미국 클라크대 심리학 교수 웬디 그롤닉, 미국 오클라호마대 교육심리학 교수 벤저민 헤디,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육대학 교수 프랭크 워렐 등 동기부여 분야 전문가 3명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왜 우리는 늘 시작하지 못하고,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동기부여에 대한 오해에서 찾는다. 사람들은 보통 동기를 성격적인 특징이나 의지력 문제로 보지만 저자들은 이는 고정관념일 뿐이며 동기는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 행동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특히 보상, 경쟁, 칭찬이 동기를 촉진한다는 통념을 비롯해 동기부여에 관한 10가지 신화에 대해 분석하고, 과학적 연구와 이론을 토대로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는 전략을 제시한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조르주 베르나노스, 정영란 옮김, 문학과지성사, 1만3000원)=영적 성찰로 죄와 은총, 악과 구원 등 문제를 탐구해 온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유작이다. 프랑스대혁명에 이은 공포정치의 종식을 불과 열흘 앞두고 한 작은 수도 공동체에서 벌어진 역사적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1794년 7월17일 국민공회 정부 공안위원회의 명으로 체포된 콩피에뉴의 가르멜 수도원 소속 열여섯 명의 수녀는 한 명 한 명 차례로 단두대에서 사라진다. 격동하는 역사에 휘말린 인간의 죽음 앞 공포, 희생과 구원의 문제를 문학적 언어로 탐구한 역작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읽는 어린 왕자 인문학(강수돌, 김윤지 그림, 그린비, 1만6700원)=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가 ‘어린 왕자’를 주제로 써 내려간 다정한 철학 에세이다. 손자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 주다가 시작된 책이다. 평생 학자로서 교육·노동·경제·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돈의 경영’이 아닌 ‘삶의 경영’을 말한다. 상품 관계는 돈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지만, 친구 관계는 돈이 없어도 돌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현실세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며 자기 성찰과 이해, 포용의 가치를 역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