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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제국’ 아시리아, 사실은 문명의 설계자였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야마다 시게오/박재영 옮김/더숲/2만5000원

 

“나부신(지혜, 학문의 신)의 소유에 속하는 모든 서기의 지식을 써서 나에게 보내라. 완전히 명령을 실행에 옮겨라!”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왕은 제국의 서기들에게 점토판 서판을 이용한 문서 수집을 지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국립도서관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흔히 ‘아시리아’라고 하면 잔혹한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제국’을 이뤘지만 가혹한 폭정 때문에 제국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 ‘실패한 제국’의 대명사로 생각돼 왔다.

 

이 같은 인식은 기본적으로 성서의 영향이 크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주민들을 제국 곳곳에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는 성경 곳곳에 잔인하고 호전적인 정복자로 묘사하게 만들었다. 성서 기록은 오랫동안 서구 문명과 기독교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고, 잔혹한 제국의 이미지로 굳어지게 됐다.

 

야마다 시게오/박재영 옮김/더숲/2만5000원
야마다 시게오/박재영 옮김/더숲/2만5000원

하지만 1850년대 니네베에서 수만 점의 쐐기문자 점토판이 쏟아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점토판이 해독되자 아시리아의 찬란한 문명과 예술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고대 오리엔트사와 아시리아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신간에서 도시 국가 아수르부터 서아시아를 호령하던 번영의 정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수께끼 같은 멸망까지 아시리아의 전 역사를 촘촘히 되짚었다. 국내에 출간되는 최초의 아시리아 통사다.

 

책에 따르면, 아시리아는 기원전 2000년경 티그리스강 상류의 상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 아수르에서 출발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9세기 칼후로 중심을 옮기며 제국 체제를 본격화했고, 계획도시 두르 샤루킨을 거쳐 니네베로 이동하면서 초대형 패권 국가로 발전했다. 하지만 기원전 612년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의 반란에 의해 니네베가 함락되면서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아시리아는 오랫동안 오명 속에 가려져 있지만 문명의 설계자였다. 방대한 기록과 유물은 아시리아가 단순한 폭력 제국이 아니라 치밀한 통치 전략과 강력한 행정 체계를 갖췄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상비군 체제를 정립하면서 현대적 국가 시스템의 기틀을 갖추고 있었고, 교통 통신망을 효과적으로 구축해 제국을 운영했다. 강제 이주 정책을 통한 융합정책을 펼쳤으며, 잔혹한 전쟁 행위마저 부조와 기록으로 보존하려 했다.

 

특히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공포 정치와 자신들의 잔혹함을 부조에 새겨 널리 알리는 그들의 행위는 무분별한 잔혹성이 아니라 계산된 고도의 통치 방식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책은 왕과 관리들이 주고받은 서신부터 원정 기록을 담은 비문과 연대기, 행정 문서와 계약 문서, 부조까지 망라한 방대한 1차 사료를 통해 균형 있는 시각으로 아시리아 제국을 해석함으로써 그 생생한 실체를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