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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목적·사법불복 수단 악용… 수사·재판 위축 우려 현실로 [심층기획-재판소원·법왜곡죄 시행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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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고소· 고발 난무하는 법왜곡죄

시행 한 달 새 사건 접수 40건 넘어
사법부 수장·중앙지검장 등 줄고발
대다수 수사·재판 결과 불만 표출
68.1%가 정치인·정당 관련 내용

소급 적용·수사 주체 불분명 논란
경찰 “법 집행 절제해야 하나” 우려
검찰 “사건 적체 더 심해질 수 있다”
기관들 법률지원 등 대책 마련 분주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겠나.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딱 맞아떨어지는 제도가 법왜곡죄인 것 같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12일로 시행 한 달을 맞는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를 두고 이같이 일갈했다. 수사와 공소 제기, 재판으로 이어지는 형사사법 전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해 적용한 판검사와 수사관(경찰 등)을 처벌한다며 도입한 이 제도가 정치적 목적이나 ‘사법불복’용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다.

특히 법 시행 이전의 수사나 재판을 문제 삼아 법왜곡죄로 고소·고발하는 행태가 이어져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르도록 한 형법 1조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왜곡죄 사건의 수사 주체 등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70%는 ‘정치적’… ‘의견문’ 더 많아

9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적으로 접수된 법왜곡죄 사건은 40건을 웃돈다. 이 중 서울경찰청에는 6일까지 법왜곡죄 사건 23건이 접수됐다. 피소·피고발된 인원은 91명으로, 법관이 26명, 검사가 36명, 경찰관이 20명, 일반인 등 기타는 9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는 1일까지 17건이 접수됐다. 하루 2건 이상은 법왜곡죄로 고소·고발이 이뤄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지금까지 법왜곡죄로 고발된 주요 인사는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지귀연 부장판사, 박철우 서울중앙지검장, 오동운 공수처장,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를 비롯한 3대 특검팀(내란·김건희·채해병) 관계자 등이 있다. 대다수 고소·고발 건은 수사·재판 결과에 불만을 드러내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이뤄진 것들이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정례 간담회에서 “법왜곡죄 사건은 대부분 자기 판결이나 수사에 대한 불만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부작용은 법안이 발의되기도 전부터 꾸준히 우려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를 통해 ‘법왜곡죄 고소·고발’이 기사 제목과 본문에 언급된 기사 204건을 살펴본 결과 68.1%(139건)에 정치인이나 정당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 기사 중 5.9%(12건)에는 정치적 불복 목적을 엿볼 수 있는 ‘반발’, ‘규탄’, ‘편향’, ‘불복’, ‘정치판사’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판사와 검사를 고발한 고발장 2건을 살펴보니 문장 3개 중 1개꼴로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이었다. 전체 38개 문장 중 사실관계를 적시한 문장은 65.8%(25개)였으나, 이 중 판례나 단순 법조문 인용 등을 제외하고 실제 사건의 실체를 다룬 문장은 10개(26.3%)에 불과했다. 나머지 34.2%(13개)는 작성자 주관을 담은 ‘의견문’이었다. “노골적인 권력의 눈치를 보는 듯한 결론”, “피고발인들의 무책임과 무개념 사고가 빚은 비윤리적 행위” 등 고발 대상을 향한 인신공격이나 정치적인 수사도 눈에 띄었다.

◆소급 적용 문제·수사 주체 등 ‘논란’

조 대법원장 고발 건의 경우 법왜곡죄 시행 첫날인 지난달 12일 접수된 ‘1호 사건’이라는 점 외에 소급 적용 논란도 주목을 받았다.

고발인인 이병철 변호사는 조 대법원장과 박영재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지난해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처리(파기환송)하면서 형사소송법상 서면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소급효 관련 지적에 이 대통령 사건이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 중(파기환송심)인 만큼, 조 대법원장 등의 행위가 ‘계속범’에 해당해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 부장판사 건도 비슷한 경우다.

법왜곡죄 관련 수사 주체가 불분명해 기관 간 갈등이나 ‘사건 핑퐁’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당장 조 대법원장 사건만 봐도 경찰과 공수처에 ‘이중’으로 고발됐다. 현행 공수처법은 판검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변호사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수사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법왜곡죄 단독으로 고소·고발된 사건은 향후 수사권한 문제가 부상할 수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법왜곡죄의 경우 명확하게 규정이 안 돼 있는 상태라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경찰청. 뉴시스
경찰청. 뉴시스

◆“법집행 절제해야 하나” 우려

서울 일선 경찰서 한 수사관은 “(법왜곡죄 시행에 대해) 법 집행을 ‘절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판사가 1심 판결을 했고 2심에 넘어갔는데 어디까지 법왜곡죄로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건지 애매하다”며 “경찰도 법 해석을 하지만, 법제처나 대법원처럼 합의체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특검 파견 등으로 인력난에 허덕이는 검찰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차장검사는 “(법왜곡죄) 그 자체로 말이 안 되는 법”이라며 “수사·재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마구잡이로 고소·고발을 하면 사건 적체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각 기관은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경찰청은 지난달 전국 시도경찰청 수사심의계에 법왜곡죄 관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참고자료를 공유했다. 해당 자료에는 수사 시 법리검토에 대한 수사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하도록 하고, 증거 위·변조가 의심될 경우에는 전문기관에 감정을 의뢰하고 입수 경위와 특이사항을 기재하는 등 검증을 강화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대검찰청은 검사가 수사와 직무 관련된 형사사건에 연루될 시 소송비용 지원을 확대하거나 법률지원단 등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이 법왜곡죄 피소·피고발 등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돕고자 ‘형사재판 보호 및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