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육중한 문이 열린다. 하지만 둘이서는 발을 들일 수 없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에 이용자는 그 안에 모든 용무를 마치고 나와야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년간 서울 시내 주요 거점을 지켰던 ‘무인 자동 화장실’ 이야기다. 약 1.5평의 좁은 면적에 들어선 이 시설은 은색 외관에 다양한 모양을 띠고 있어 시민들에게는 화장실이라기보다 도심에 착륙한 작은 우주선 같은 ‘미래 지향적’ 인상을 남겼다.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며 상세한 공식 기록은 희미해졌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는 관련 게시물이 남아 그때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엿보인다. 광장시장, 청계천 다리 일대, 뚝섬유원지 그리고 대학가 유흥가 등 유동 인구가 밀집한 지점이 주요 설치 장소였는데, 천변 산책로에서 운동하던 시민들에게는 요긴한 편의시설이었고 인도를 지나던 행인들에게는 급한 생리 현상을 해결해 주는 소중한 ‘대피처’였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일반 공중화장실과 달리 24시간 운영해 밤늦은 시간 매우 편리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의 생생한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한국화장실문화협회 등에 따르면 무인 자동 화장실이 서울 땅을 밟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의 선진화된 화장실 문화를 세계에 알리며, IT 기술력을 홍보하는 취지가 컸다. 이용자가 나간 빈 상태에서 내부를 자동으로 세척하고 소독과 건조까지 마치는 등 일반 상가 화장실보다 월등히 깔끔한 상태를 유지했다.
2009년 기준 서울시의 ‘무인 자동 공중화장실 관리 방안’ 자료를 보면, 종로구 기준 대당 설치비가 9000만원에 달했을 정도로 지자체는 선진 화장실 문화 정착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 강국’을 꿈꾸던 야심 찬 도전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며 꺾이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 모델이 국내에서는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퇴장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사용에 따른 고장과 장비 파손이었다. 지자체는 한국화장실문화협회 등 관련 단체와 손잡고 소모품 도난 방지와 시설 아껴 쓰기 등 시민의식 고취를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관리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몰지각한 일부 사용자의 행태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고 노후화된 시설은 점차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변해갔다. 수리비가 지원되기는 했지만 대당 100만원 정도로 낮아 점차 관리의 끈을 놓는 지점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가 건물 화장실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개방 화장실’ 정책이 확대되고 지하철역 화장실이 현대적으로 정비되면서 무인 시설에 대한 의존도 자체가 낮아졌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남녀 화장실 구분 설치 규정도 걸림돌이 됐다. 한 번에 한 명만 이용 가능한 구조상 성별 구분이 모호해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잦아졌다.
2013년 서울시가 유지 관리 한계에 이른 시설 철거 권고를 내리면서, 시내 곳곳의 무인 자동 화장실들은 서서히 잊힌 존재가 됐다.
여러 단체와 지역구 문의 과정에서 오히려 ‘그런 곳이 있었느냐’는 답변이 돌아올 정도로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유산이다. 과거 이 화장실을 이용했던 한 누리꾼은 “급할 때 아주 고마운 곳이었는데, 이용자들의 시민의식만 조금 더 뒷받침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블로그에 적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관리가 까다롭고 이용률이 낮아지면서 서울 시내에 남은 곳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