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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문턱 넘어도… 28년 전 낡은 ‘중증도 기준’에 골든타임 놓친다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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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중증도 분류 ‘KTAS’ 개편 시급

1998년 설계된 분류체계 그대로 유지
뇌졸중 3시간 넘으면 ‘응급’ 등급 하락
의학 발전에 24시간 내 치료 가능한데
정부 고시 개정 늦어져 현장은 ‘발동동’

환자 65%가 비중증 분류되는 왜곡에
병원들도 기피… ‘응급실 뺑뺑이’ 반복
중증 감별 배후진료과 전문의 공백 심각
“응급센터 최소 1인 이상 상시 배치를”

아침까지만 해도 A(여·67)씨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오전 10시, 평소처럼 승용차에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가족의 신고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A씨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17분. 뇌졸중 증상이 처음 발생한 지 3시간17분 만이었다.

A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의식 저하와 언어장애, 우측 완전마비에 뇌졸중 중증도 점수(NIHSS)는 21점. 중증 기준인 15점을 훌쩍 넘었다. 좌측 중대뇌동맥이 막혀 있었고, 좌측 뇌 전반의 혈류가 저하된 상태였다. 다행히 신경과 의료진과 즉각 연결이 됐고, 혈전용해제를 쓸 수 있는 ‘골든타임’(4시간30분)도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광주 한 종합병원에서 응급상황용 긴급출동 의료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광주 한 종합병원에서 응급상황용 긴급출동 의료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그러나 A씨는 ‘경미한 호흡곤란’이나 ‘흑변’과 같은 수준인 3단계 ‘응급’ 환자로 분류됐다. 뇌졸중은 골든타임 안에 얼마나 빨리 혈류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생존과 후유장애가 갈리는 대표적 응급질환이지만 A씨는 28년 전 만들어진 현행 응급실분류체계(KTAS)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KTAS를 거슬러 즉각 초급성 뇌졸중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응급실 도착 23분 만에 혈전용해제가 투여됐고, 막힌 혈관은 재개통되면서 A씨는 가까스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환자들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응급실 미수용)’를 막기 위해 정부가 광역응급의료상황실 중심의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시행하며 체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환자들이 응급실 문턱을 넘어도 환자 중증도를 왜곡할 수 있는 낡은 분류 기준과, 응급환자의 최종 진료를 담당하는 배후진료과 전문의의 공백이 해소되지 않으면 위험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엇박자 중증도 분류에 골든타임 놓쳐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응급실에서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법적 기준인 KTAS는 1998년 캐나다 자료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뇌졸중의 경우 치료 가능 시간을 발병 후 3시간 이내로 보고 있어 이 시간이 지나면 3단계 ‘응급’으로 내려간다.

문제는 그 사이 의학이 크게 발전했음에도 응급실 분류 기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정맥혈전용해술뿐 아니라 동맥 내 혈전제거술을 통해 발병 24시간 이내 뇌졸중 환자까지 치료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2021년 대한응급의학회가 24시간 기준으로 뇌졸중 환자의 2단계 상향안을 마련했음에도 정부 고시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막상 현장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즉 구급대가 긴급 환자로 판단해 적정 병원까지 신속하게 이송해 와도 응급실 안에서 우선순위에 밀려나는 모순이 반복되는 구조다. 실제 국내 한 대학병원 조사에서는 전체 뇌졸중 환자의 65%가 응급실에서 3단계로 분류됐다.

고상배 대한뇌졸중학회 정책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구급대 단계에서 사용하는 병원 전 중증도 분류체계(Pre-KTAS)에는 최신 기준이 반영돼 24시간 이내 뇌졸중 환자를 ‘긴급’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정작 응급실에서 쓰이는 KTAS는 과거 기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뇌졸중 환자 상당수가 응급실 도착 후 상대적으로 낮은 중증도로 분류돼 진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뇌졸중 환자는 지금도 1998년 기준으로 치료받고 있는 창피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KTAS 1·2등급만 중증환자로 집계되는 구조 때문에 실제로는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고도 행정상으로는 비중증환자를 본 것으로 처리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이사는 “결국 병원 입장에서는 뇌졸중 환자를 받지 않으려는 유인이 생긴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이송체계를 개선해 적정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더라도 병원 안에서 중증환자 분류에 왜곡이 이어진다면 ‘응급실 뺑뺑이’는 형태만 바뀐 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배후진료과 전문의 응급실 상주 의무화해야”

더 심각한 것은 응급실 안에서 왜곡된 분류를 즉시 교정하고 최종 치료로 연결할 배후진료과 전문의의 공백이다. 현행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에는 응급실 전담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에 관한 필수 규정이 있을 뿐 내과·신경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중증 응급질환을 감별할 수 있는 배후 진료과를 두도록 한 의무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응급실이 환자를 일단 수용하더라도 중증응급환자를 즉시 감별해 최종 치료 단계로 연결할 전문과 판단이 지연되면서 골든타임이 다시 소실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이경복 대한뇌졸중학회 부이사장(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과)은 이 같은 응급의학과와 배후 전문진료과 간 협조 부재가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응급실 환자의 질환이 신경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신경외과 등 필수진료과에 집중돼 있고, 전문의 1인당 환자 수 부담도 크다. 이들 전문의가 응급실에 상주하지 않으니 판단이 지연되거나 환자를 받지 않을 수밖에 없다”며 “전문 진료과는 충분히 받을 수 있었는데 응급실에서 그 부분을 파악하지 못해 환자가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증환자 과밀로 응급실에서 수용이 불가하더라도 배후진료과에서는 충분히 치료 여력이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심뇌혈관 질환의 경우 응급실 1차 진료 후 전문의 평가 후 약 52%가 진단과 치료가 완전히 바뀌었고, 35.1%는 추가 처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이사장은 “내과·소아청소년과·신경계 등 이른바 ‘바이탈’ 진료과 전문의를 권역·중증응급의료센터에 최소 1인 이상 상시 배치해 트리아지(중증도 분류·선별)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 같은 체계는 단순한 인력 보강을 넘어 중증응급환자의 감별진단, 신속한 치료 결정, 병원 간 전원 조율 등 응급의료 전 과정의 효율성을 높여 골든타임 확보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