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첫 종전 협상이 결렬되면서 후속 상황에 시선이 집중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계속 설득해 협상을 이어 나갈지, 이란을 굴복시키기 위한 전쟁에 다시 나설지 선택의 길에 서게 됐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판단한 이란은 승전국 수준의 종전안을 고수하고 있다.
상당한 양보 가능성을 상정한 채 이란과의 협상을 이어가는 것도, 글로벌 시장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줄 것이 뻔한 전쟁을 재개하는 것 모두 미국에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JD 밴스 부통령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이 이끄는 이란 대표단은 11일(현지시간)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나 마라톤 종전 협상을 벌였지만 최우선 의제인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정상화 문제와 이란 핵 문제를 놓고 이견을 노출한 끝에 서로 등을 돌렸다.
밴스 부통령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최고이자 최종인 제안을 제시했고 이란이 수용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공을 이란에 넘겼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 이스라엘의 압도적 화력 공세에도 버텨 생존했다. 나아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종전 협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어, 여간해서는 요구 조건을 크게 뒤로 물리지 않을 태세다.
이란은 이번 협상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 즉각 정상화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운을 띄운 '통행료 공동 징수'안까지 거부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아울러 협상의 본질적 영역인 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평화적 핵 농축권 유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이란 협상이 결렬 당시 마이애미에서 UFC격투기 관람 중이었다.
그는 이번 회담 중 수차례 밴스 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란과 대화에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에 오른 밴스 부통령의 보고를 받고 나서 다음 행보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협상단을 함께 이끈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수십년 친구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의 의견도 결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란의 뻣뻣한 태도를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대화를 이어가 절충을 통한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계속할지, 이란의 양보를 압박하기 위해 군사 행동에 나시 나서야 할지 갈림길에 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실패로 트럼프 행정부는 몇 가지 달갑지 않은 선택지에 직면하게 됐다"며 "이러한 선택지들은 모두 상당한 전략적, 정치적 부담을 수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문명을 소멸시키겠다는 위협까지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적 군사 대결을 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은 지상전 병력을 포함한 군사자산을 중동에 계속 증강 배치하며 여전히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앞서 이란전에 투입된 에이브러햄 링컨, 제럴드 R. 포드 항모전단에 이어 조지 H.W. 부시 항모전단이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 핵심 기지인 하르그섬 장악전, 호르무즈 해협 안전 확보전을 염두에도 두고 각각 수천명의 해병대와 정예 공수부대 대원들을 중동에 속속 집결시키고 있다.
미군은 이란과 협상 중에 기습적으로 방공 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 2척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시켜 페르시아만 안에 투입했다. 이는 이번 전쟁의 운명을 좌우할 호르무즈 해협 탈환 작전을 위한 '빌드업' 차원의 포석이다.
하지만 지상전을 포함한 군사옵션은 세계 에너지 수급 비상사태를 악화시켜 미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에 걷잡을 수 없는 추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부담을 주는 카드다.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물가 급등이 가시화하는 점에서 강행하면 강행할수록 역효과가 나는 군사작전은 트럼프 행정부에 거대한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시한'의 압박도 받고 있다.
그는 헌법상 전쟁 선포권을 가진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이란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의 전쟁권한법은 대통령이 긴급 상황 시 군대를 동원해도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60일 안에 작전을 종료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국에서 이 규정의 법적 구속력을 둘러싼 논란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뜩이나 미국 내에서 이란 전쟁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이 기간을 넘겨 전쟁이 지속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받는 법적, 정치적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인정 등 승전국 수준에 가까운 10개항 요구를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상호 양보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에도 큰 부담이 따른다.
이란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새롭고 강력한 카드를 새로 손에 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란은 '주권'을 내세우며 종전 뒤까지 '해협 관리권'을 유지하면서 '통행료' 수취 체계를 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히고 있다.
미국 정부는 우선 공식적으로는 자유항행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통행료를 미국과 이란이 '공동 징수'하는 아이디어를 공개 거론하면서 이란의 주장의 수용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인정은 공해 자유항행을 기반으로 한 세계 무역 질서 근간을 흔드는 처사다.
또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재건 비용을 국제사회에 떠넘기는 성격도 강해 미국이 향후 미 문제로 이란과 타협했을 때는 미국 안팎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면서 강한 후폭풍이 일 수 있다.
아울러 협상의 본질 격인 이란 핵 문제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 자신이 걷어찬 2015년 체결 이란 핵 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보다는 나은 결과를 끌어내야만 이번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란은 도리어 호르무즈 해협 봉쇄 능력을 협상 지렛대 삼아서 핵무기 개발 의도가 없다는 선언 뒤로 우라늄 농축권 유지 등 잠재적인 핵 개발 능력을 보전하려는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 결렬 결과에 직접적인 반응을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그는 12일 새벽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협상을 거부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해군력을 이용한 이란 해상 봉쇄에 나설 것이라는 취지의 우파 대안매체의 보도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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