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마무리된 종전 1차 협상에서 이란과 미국은 기존의 핵심 조건들을 둘러싸고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협상 재개와 종전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양측 모두 주요 의제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최종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11일(현지시간) 협상에 정통한 이란 관리를 인용한 미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호르모즈해협 재개방과 이란이 보유한 400㎏ 규모의 고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 약 27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의 이란 해외 동결 자산 방출이 주요 쟁점이었다.
이란 핵위협이 미국이 내세운 전쟁 명분인 만큼, 핵위협 제거는 종전의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 전량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에 더해, 향후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자체를 제한함으로써 핵무기 개발 잠재력까지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사실상 ‘항복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유 중인 핵물질뿐 아니라 미래의 핵무기 개발 잠재력까지 포기하라는 요구는 안보의 마지막 방패를 내려놓으라는 압박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핵 문제는 협상 의제 가운데서도 양측이 가장 타협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J D 밴스 미 부통령도 협상 후 기자회견에서 “문제는 이란이 지금뿐 아니라 2년 후에도, 장기적으로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근본적인 의지를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우리는 아직 그런 확약을 보지 못했지만, 보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란 측은 “미국 대표단이 호르무즈해협과 핵물질 제거를 포함해 전쟁에서 얻지 못한 양보를 협상에서 얻어내려 했다”면서 “미국 측은 탐욕스러운 마음가짐 탓에 이성과 현실감각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해협 논의와 관련,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을 즉각 개방하라고 요구한 반면, 이란은 최종 합의가 타결된 이후에야 해협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으로서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현재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인 만큼, 해협을 먼저 개방하는 것은 전쟁과 협상에서 확보한 지렛대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해협 봉쇄가 글로벌 유가 상승과 미국 경제에 주는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협 통행 정상화를 이번 협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문제도 걸림돌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협상 관계자들을 인용해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며 미국은 이란과 함께 해협을 공동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란은 이를 거부하고 단독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설명했다.
이란의 전쟁 배상 요구도 미국 측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란 국영 IRIB방송에 따르면 이란은 회담 전 △호르무즈에 대한 통제 권리 인정 △전쟁 피해 배상 △이란의 해외 동결자산 해제 △중동 전역에서의 교전 중단 등 4가지 ‘레드라인’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협상에서 이란은 6주간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하고 이라크, 룩셈부르크, 바레인, 일본 등에 동결된 석유 수익금을 재건 자금으로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전쟁 피해 배상’은 자국의 승리를 내세우는 미국이 인정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합의 여부는 내게 상관없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이긴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전쟁의 패자가 합의 조건을 정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남은 휴전 기간 협상은 재개될 전망이지만 타결 가능성은 안갯속이다. 양국은 앞으로도 수싸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결렬 몇 시간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굴복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꺼낼 카드: 해상 봉쇄’라는 제목의 기사 링크만 게재했다. 다만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나 입장을 직접 밝히지는 않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결렬 몇 시간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굴복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꺼낼 카드: 해상 봉쇄’라는 제목의 기사 링크를 공유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기사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고,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과 인도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등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에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가 자기 마음에 드는 기사를 SNS에 올리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해상 봉쇄라는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란과 싸우면서도 유가 급등 등을 고려해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지는 않았다.
협상이 난항인 가운데, 이스라엘은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한 공습을 지속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영상 성명에서 “아직 할 일이 더 남아 있다”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