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은 이들을 천시하여 ‘강자(江者, 강가 놈)’라고 일컫고 ‘강인(江人, 강가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이규상,〈강상설〉)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당시보다 3배 이상의 타격이 올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한강은 ‘조선의 호르무즈’였다. 한강은 단지 서울의 강이 아니라 조선의 대동맥이었다. ‘한양’이라는 이름 자체도 한수(漢水)의 ‘한’과 음양의 ‘양’을 합친 것이다.
오늘날 한강은 한가로운 산책로를 품은 낭만적 공간이다. 지금이야 한강 변에 산다 하면 으레 고가의 아파트를 떠올리지만, 조선시대 한강은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던 삶의 현장이었다.
그 역동성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강에 기대어 살아가던 ‘강인(江人)’들이었다. 당시 한강 변은 돈을 밝히고 드세며 예의를 모르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여의도도 마찬가지여서, 주민이 남녀 할 것 없이 옷을 벗고 강을 건너는 일이 잦자 급기야 이곳을 비워 공동화(空洞化)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있었다.
서울 주민은 한강 주변 이들을 ‘사람 인(人)’ 대신 ‘놈 자(者)’를 붙여 ‘강자’, 다시 말해 ‘강가 놈’ 혹은 ‘강변 놈’이라고 깎아내렸다. 강바람을 맞으며 억척스레 짐꾼이나 뱃사공 등 험한 일을 도맡아 한다는 이유였다.
뱃사공 이경운의 일화는 그들의 위태롭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경운이 몰던 곡물 배가 침몰했다. 관아의 관리와 곡물 주인들은 그를 가혹하게 닦달하며 배상을 요구했다. 매일 술로 괴로움을 달래던 이경운에게 박세근은 곡물을 빼돌린 다음 고의로 배를 침몰시킨 것 아니냐며 의심했다. 격분한 둘은 칼부림을 벌였고, 이경운은 박세근의 칼에 찔려 죽었다. 배를 모는 일 자체도 험난했지만, 강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역시 가혹했다.
하지만 멸시와 달리, 강인들은 조선 물류의 대동맥을 쥐고 흔든 실세였다. 고단한 노동과 멸시 속에서도 한강의 강인들은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서울로 들어가는 미곡과 소금의 가격을 좌지우지할 만큼 성장했다.
강인의 세력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1833년(순조 33) 쌀 폭동 사태가 잘 보여준다. 당시 미곡 유통에 깊이 관여하던 강인들은 담합해, 서울로 유입되는 쌀을 제한했다. 공급이 줄자 가격은 폭등했다. 굶주림에 지친 서울 주민들은 강인과 결탁했던 쌀집은 물론, 쌀을 숨겨놓은 창고에 불을 지르며 분노를 터뜨렸다. 멸시받던 ‘강가 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서울 사람의 밥줄을 쥐락펴락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여름철 최고 사치품인 ‘얼음’ 역시 강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자본을 갖춘 서울의 부호들은 한강 변에 사설 빙고(사빙고)를 짓고 운영했다. 그 안을 채우는 고된 노동은 강인들의 몫이었다. 뱃길이 끊기고 강이 꽁꽁 얼어붙는 매서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깨고 무거운 얼음을 채취해 옮기는 일은 강인들이 겨울을 버티는 가장 중요한 일거리였다. 서울 주민의 땀을 식혔던 시원한 얼음 한 조각에는 강인들의 억센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강인들은 한강에서 약을 길어 올렸다. 조선시대 한강의 물은 약으로 쓰였다. 체내에 가래나 진액이 뭉쳐 생기는 질환인 담벽증(담증)에 효험이 있는 약수를 ‘우통수’라고 불렀다. 이 ‘우통수’가 한강으로 흘러들어오면 이를 ‘한중수’ 혹은 ‘강심수’라 부르며 약으로 음용했다. 정조는 담증 치료를 위해 노량에서 이 ‘강심수’를 길어 마셨다. 강심수는 한강 가운데 몇 곳에서만 길을 수 있었다. 약수인 만큼 조정 대신이라도 임금의 허락을 받은 다음에야 강심수를 길어 마셨다. 임금의 약수는 담당 관리가 길었겠지만, 서울 주민이 마실 강심수를 길어 올리는 일은 한강의 물길을 손금 보듯 알던 강인의 몫이었다.
조선시대 한강 곁에 살던 강인은 짐이나 나르고 배를 몰던 하층민이 아니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가 전 세계의 경제를 뒤흔들 듯, 조선시대 강인은 마음만 먹으면 물류의 대동맥을 틀어쥘 수 있던 거대한 세력이었다. 이들은 팍팍한 신분제의 멸시 속에서도 얼음부터 약수까지 서울 주민의 삶을 책임졌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물결 이면에는, ‘조선의 호르무즈’를 지배하며 묵묵히 시대를 끌고 나갔던 ‘강 사람’의 짙은 숨결이 배어 있다.(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12).
홍현성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