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13일,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칠레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가 선정되었다.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1979년 미국 호텔 체인 하얏트 창업 가문에서 제정한 이래 올해 48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상은 인류와 건축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생존 건축가에게 수여된다.
프리츠커상은 특정 건축물 하나가 아니라 건축가의 전체 업적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경력 30년 이상의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건축가로 자신의 건축철학이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수를 아시아만 놓고 보면, 9명을 배출한 일본이 압도적으로 많고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가 각 1명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없다. 특히 일본 건축가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일본은 미국과 나란히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일본은 2025년 10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히로시마 국제건축제’ 특별전으로 ‘9가지 비전(visions): 일본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본 건축가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오노미치 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이 미술관은 1995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고 여기에 전시된 건축가는 모두 프리츠커상 수상자였다.
어느 나라보다 일본에 대한 경쟁심이 유독 강한 우리로서는 ‘한국은 왜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내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서양건축을 받아들인 역사를 가진 일본에 비해 서양건축의 역사가 짧은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무엇이 이런 다름으로 귀결되었을까.
한국과 일본의 주거문화 차이가 아닐까. 한국은 197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한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농촌 인구가 대거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로의 인구 집중으로 주택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아파트가 등장했다. 일거에 많은 수의 주택을 공급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주거환경을 유지하기에는 아파트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경제성장으로 인해 아파트값이 오르기만 하니 아파트는 집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이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도 뛰는 아파트값을 따라잡기 힘들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파트를 사야 주류사회에 끼일 수 있다. 이렇게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아파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문화로 자리 잡았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급속한 경제성장의 산물이기도 한 우리의 아파트 중심 주거문화는 도시환경과 건축문화의 측면에서 몇 가지 부정적인 면이 있다. ‘국평 32평’으로 대표 되는 아파트의 규격은 표준과 효율에 방점이 맞추어져 있어 획일적이다.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아파트는 각 개인과 가족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규격화된 상자 속에 욱여넣도록 강요하고 있다. 아파트 건설은 건설회사가 주체가 되고 건축가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건설회사에 종속되어 있어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적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평가할 때 어떤 회사가 건설한 것에 관심이 있지 설계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파트에 살다 보니 건축가가 집을 설계할 기회가 적다. 우리와는 달리 국민 대다수가 단독주택에 사는 일본에서는 건축가가 크고 작은 다양한 주택을 설계할 기회가 많다.
인간의 삶을 담는 집은 건축의 기본이다. 건축은 거대한 공공 건축물이나 기념비적인 건축물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인간이 처음 필요로 했던 공간은 비를 피하고, 더위와 추위를 막고, 휴식을 취하고,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이렇듯 주택은 인간의 삶을 포용하는 총체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여러 건축물이 파생되는 출발점이다.
주택을 설계할 기회가 적은 한국의 건축가는 건축의 기본기를 연마할 기회가 적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건축가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건축가는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을 계획하는 전문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아파트라는 ‘기성품’에 살다 보니 건축가를 만날 일이 없다. 당연히 건축가도 집을 짓겠다는 고객을 만날 기회가 적다. 행여 아파트가 낡아 내부를 리모델링할 때도 사람들은 건축가를 찾지 않는다. 대신 아파트 단지 상가에 즐비한 인테리어업자를 먼저 떠올린다. 그들이 리모델링 전문가를 자처한다.
공공에서 발주하는 대형 건축물은 주로 대형 건축설계사무소들이 차지한다. 자금력과 로비력이 그들의 힘이다. 창의력까지 있는지는 모르겠다. 조직이 크다고 창의력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다. 큰 조직은 의사결정이 복잡해 오히려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형 건축설계 현상공모가 나오면 자금력 있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해외 유명 건축가에게 기본설계를 받아온다는 소문도 있다. 우리나라 대형 건축설계사무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작 우리 스스로는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외국 유명 건축가의 명성은 돈으로 산다.
로비력과 자본력보다는 창의력이 번쩍이는 건축가가 당선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의 건축설계 공모전부터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 척박한 한국 건축계의 현실에서도 건축설계의 매력에 빠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축가 중에서 머지않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