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4일 오후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고등학교 교과서 역사지리와 공민 과목의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 세계사탐구 6종, 일본사탐구 6종, 지리탐구 3종, 정치․경제 5종이 합격했다. 우익 성향의 레이와서적(令和書籍)에서도 역사총합 1종, 세계사탐구 1종, 일본사탐구 2종을 검정 신청했지만 2024년 추가로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달리 모두 불합격했다.
이번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서 특히 우려되는 점은 역사 기술의 퇴행이 이제는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2022년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는 2018년 학습지도요령에 기초하면서 교과서 기술상 표현을 수정하도록 지적을 받은 곳이 적지 않았다. 2025년에는 2022년에 이어서 학습지도요령에 따라야 하는 두 번째 교과서 검정 신청이 있었다. 올해 결과 발표 후 공개된 검정신청본에서 세계사탐구와 일본사탐구의 독도,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은 학습지도요령과 해설, 그리고 2021년 ‘각의 결정’의 내용이 거의 다 반영되었다. 이전 교과서에서 사용되었던 ‘강제연행’ 같은 표현은 사라지고, ‘각의 결정’이라는 정치적 결정에 속박되어 ‘동원’이라는 표현으로 수정이 가해졌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의 전쟁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작업이 문구 수정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도에 대하여 일본교과서에서는 ‘일본의 고유영토’로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되었는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이어서 일본은 한국에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세 차례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에서 여기에 응하고 있지 않다는 식의 표현이 교과서마다 거의 비슷하게 기술돼 있다. 2022년과 2026년 두 차례에 걸친 검정 결과 발표는 학습지도요령과 ‘각의 결정’에 기초한 일본 정부의 견해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면서 교과서라는 공교육의 틀을 통해 관철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최근 일본교과서 검정의 또 다른 위험한 특징은 젊은 세대의 인식을 장악하려는 정교한 시각 매체의 활용 전략에 있다. 지리탐구나 정치․경제 교과서 등에서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세밀한 경계선을 긋고, 독도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자국 영해로 표시하는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올해 검정에서는 지리탐구에 기존에 없던 독도 사진이 추가되기도 했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기 전, 학생들은 지도와 더불어 사진 등의 시각 자료를 통해 독도를 일본의 영토인 것처럼 무의식중에 수용하게 된다. 또한 교과서 곳곳에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QR코드는 학생들이 도쿄에 위치한 영토·주권전시관 같은 대국민 홍보기구로 접속하여 실감영상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향후 연계시킬 가능성이 있다. 교실 안 교과서와 교실 밖 홍보 창구를 실시간으로 연동시켜 젊은 세대가 정부의 논리에 익숙하게 만드는 교육 방향은 미래 세대를 보편적 가치가 아닌 국가가 설계한 틀 안에 사고를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내년에는 일본 정부에서 학습지도요령 개정판을 새로 발표할 예정이다. 교과서 검정의 최상위 지침인 학습지도요령은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 집필자와 출판사가 일본 정부의 서술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검정을 통과할 수 없다.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내년 개정안이 그간의 왜곡된 성과를 바탕으로 영토에 대하여 좀 더 세부적인 표현 문구를 추가하고, 지도상의 시각적 효과를 더욱 세밀하게 강제하며, 일본 정부의 식민지에 대한 책임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서술이 개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학습지도요령이 어떻게 개정되는지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찰과 주시가 필요하다. 내년에 새로 발표될 일본 정부의 학습지도요령 개정판이 갈등의 씨앗이 아닌 공존의 안내서가 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 시민사회와 학계의 입체적이고 끈기 있는 문제 제기, 소통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한민 동북아역사재단 교과서연구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