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외교적 잡음이 적지 않은 가운데 중국이 각국 정상과 고위급 인사들이 집결하는 글로벌 외교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베트남의 새로운 1인자 또럼 공산당 서기장이 첫 해외 순방지로 중국을 택했고, 러시아 외무장관과 스페인 총리,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자가 동시에 베이징을 찾으며 중국의 지정학적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다.
1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럼 서기장은 이날부터 17일까지 중국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지난 7일 국가주석으로 선출되며 서기장직을 겸임하게 된 럼 서기장이 취임 후 첫 대외활동으로 중국을 선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럼 서기장은 방중에 앞서 이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게재한 3700자 분량의 기고문에서 양국의 전략적 협력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중국과 전통적 우호를 계승하고 양국 전략적 연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길 희망한다”며 정치적 신뢰 강화와 실질 협력의 질적 전환 등 4대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럼 서기장은 “베트남은 중국과 함께 고위급 합의와 국제법에 기반해 이견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양국 간 갈등 요소를 관리하면서도 경제적·정치적 실리를 위해 중국과의 밀착을 가속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방중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창 국무원 총리 등 중국 지도부와 연쇄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역시 이날부터 이틀간의 일정으로 베이징을 찾았다. 라브로프 장관의 이번 방문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동 정세 등 국제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조율할 계획이다.
베트남통신·러시아외무부·공동취재단 제공, AFP·AP연합뉴스
중국 외교부는 라브로프 장관의 방문을 통해 ‘신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만남은 왕 부장이 지난 9~10일 북한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과 전략적 소통을 나눈 직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같은 행보는 다음달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러시아, 북한 등 전통적 우방과의 결속을 다지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전날 도착했다. 산체스 총리의 방중은 최근 4년 사이 네 번째로, 유럽 주요국 정상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높은 빈도다. 산체스 총리는 이날 시 주석과 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은 스페인 농산물의 중국 시장 접근성 확대와 스페인 운송 및 인프라 역량 개발 협력에 합의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산체스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현재 세계는 혼란이 심화하고 있으며 공정과 힘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며 “양국은 세계가 ‘정글의 법칙’으로 회귀하는 것을 반대하고,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체제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 질서를 유지하길 촉구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리 총리 초청으로 12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 중인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자도 만났다. 시 주석은 현 중동 상황과 관련해 국제관계의 기본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평화공존 △국가주권 △국제법치 △발전과 안보의 조화 4가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시 주석의 이 같은 발언은 스페인이 미국의 이란전쟁을 강력히 비판한다는 점에서, UAE는 중동발 위기로 에너지·원자재 공급망이 흔들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쟁 이후 동맹도 거침없이 비판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 낸 공백을 중국이 잠식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