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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한국 찾은 IAEA 사무총장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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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57년 창설됐다. 핵 물질의 군사적 이용, 즉 원자폭탄 제조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지키는 것이 핵심 목표다. 다만 핵무기를 ‘합법적으로’ 보유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미국·영국·중국·프랑스·러시아)은 예외다. 그 때문에 IAEA를 겨냥해 ‘강대국들 기득권만 옹호하는 단체’라는 비판적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2025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합의에 따라 앞으로 핵추진 잠수함(핵잠)을 만들어 운용할 계획이다. 그러려면 IAEA의 철저한 사전 검증을 통해 ‘혹시 핵무기로 전용하려는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야 한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밝은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적의 그로시는 오는 2027년 1월1일 임기를 시작할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선거에 입후보한 상태다. 뉴스1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밝은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적의 그로시는 오는 2027년 1월1일 임기를 시작할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선거에 입후보한 상태다. 뉴스1

국제사회에는 ‘어느 나라가 IAEA의 사찰을 거부하면 전 세계 신문에서 1면 기사로 보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있다. IAEA 사찰 거부는 곧 은밀한 핵무기 제조 시도를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IAEA와 ‘악연’이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과거 소규모의 우라늄 농축 실험이 진행된 사실이 알려지며 IAEA의 사찰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자칫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비화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을 수도 있었다. 미국 등을 상대로 “핵무기와 무관한 순수 과학 실험”이라고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IAEA 사무총장이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83·이집트)는 아직도 한국 전현직 외교관들의 뇌리에 ‘저승사자’로 기억된다.

 

아르헨티나 외교관 출신인 라파엘 그로시(65) 현 IAEA 사무총장도 한국과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23년 일본이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나서기 직전 주변국들, 특히 한국의 야당과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IAEA는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같은 결론을 한국에 설명하고자 2023년 7월 방한한 그로시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부터 규탄 시위에 가로막혀 입국 절차가 장시간 지연됐다. 당시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단식 중이던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은 IAEA의 검증 결과에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검증”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로시로선 야당과 시민단체를 향해 “11개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안전성 검증에 참여했다”며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2023년 7월 한국 국회를 방문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과의 면담 도중 나란히 물을 마시고 있다. 제주 서귀포가 지역구인 위 의원은 당시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3년 7월 한국 국회를 방문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과의 면담 도중 나란히 물을 마시고 있다. 제주 서귀포가 지역구인 위 의원은 당시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랬던 그로시가 거의 3년 만인 15일 다시 한국 기자들 앞에 섰다. 핵잠 도입을 추진 중인 한국 정부에 대해 그로시는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철통같은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IAEA와 한국 간에 반드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잠 건조·운용을 간절히 원하는 한국 앞에 IAEA가 ‘슈퍼 갑’으로 부상한 느낌이다. 오는 2027년부터 임기를 시작할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등록한 그로시는 이날 “유엔이 국제사회 신뢰를 회복하고, 국제기구로서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선거 유세를 방불케 하는 발언이다. 이재명정부가 그로시 지지 여부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정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